[인人터뷰] 장태평 前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구제역·AI, 농장주 철저한 방역 의식이 가장 중요”

입력 2017-02-15 05:03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을 막기 위해선 정부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대응과 농장주의 철저한 방역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성호 기자
고은 시인은 20여년 전 왜 시를 쓰느냐는 물음에 “저 소가 울기 때문에 내가 운다고/ 저 송아지가 움메라고 어미를 부르므로 나도 누구를 부른다고/ 시는 무엇을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참혹한 죽임을 당하는 영혼을 위무하는 시 ‘명복’ 중). 인간 곁에서 삶의 밑천이 되고 자식들 교육비가 되기도 한 소를 인간의 탐욕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6일 충북 보은 젖소농장에서 올겨울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한 데 이어 전북 정읍, 경기 연천 등 9건으로 구제역이 확산됐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구제역이라는 불청객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A형, O형 두 종류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동시에 출현했다. 2000년 이후 16년간 구제역이 8번이나 발생해 살처분 비용 등 3조3000억원의 세금을 쏟아부었는데도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명박정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장태평(68)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을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회의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구제역이나 AI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구제역이나 AI 바이러스도 독감과 비슷하다. 독감 백신을 맞아도 효과가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듯이 구제역이나 AI도 바이러스 변형들이 나오고 전파가 빠르다 보니 100% 방역할 수 있는 백신은 없다. 다만 최소화할 뿐이다. 책임자들, 즉 정부의 관리와 농장주의 방역의식도 미흡하다. 축산시설이나 유통과정에서 허점이 많다 보니 자주 발생하고 있다. 선진국이라고 환경이 굉장히 좋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과 농장주의 철저한 방역을 통해 피해가 적어지는 건데 그런 부분에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

-AI 사태가 났을 때 일본은 확진 판정 두 시간 만에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방역을 지시하고 국가재난 상황을 선포하는 등 범정부 대책을 수립해 200만 마리 살처분에 그쳤다. 우리는 우왕좌왕하다가 3200만 마리 넘는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정부는 왜 이리 무능한가.

“외국과 비교했을 때 제대로 대처를 못한 것은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2010년 구제역 때 3조원 가까이, 이번 AI로 1조원 넘게 피해가 난 것은 정부 책임이 크다. 정부가 먼저 과학적 대응을 해야 한다. AI든 구제역이든 동물 질병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백신과 진단제 개발 등을 할 수 있는 연구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일단 발생하면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그게 미흡하다. 제가 장관 할 때 하지 그랬느냐는 말도 있을 수 있지만 상황이 자꾸 달라질 때 이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대응해야 한다. 농장주 책임도 크다. 농장주의 방역활동 교육은 시간이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교육을 강화하고 잘못됐을 때 적절하게 책임도 부과해야 한다. 농장주들이 그게 무서워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외국 농가와 비교해 보면 우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구제역이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 살처분도 하고, 계란 유통도 못하게 하니까 농가 입장에서 보면 당장 불이익이 오니까 신고를 안 한다. 심지어 알고 있으면서도 반출하고 팔고 난 다음 신고하기도 한다. 일차적 책임자인 농가가 잘하도록 제도를 갖추고 교육하는 것도 정부 역할이다.”

-2010년 구제역으로 348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사상 최악의 피해가 난 뒤 백신 접종이 의무화됐다. 그런데도 구제역이 발생했다. 정부는 축산농가가 접종을 제대로 안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사실일 수 있다. 백신을 맞고 난 뒤 체중이나 젖소 유량이 감소한다는 설이 있고 하니 농가가 실제 안 맞힌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 백신을 맞혔다고 해도 100% 항체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가 주사를 잘 놔도 87%, 농가가 했을 때는 50여% 정도로 30% 포인트가량 차이가 난다. 아예 백신이 효과 없는 ‘물백신’인 경우도 있었다. 이것도 정부 책임이다. 백신을 접종해도 100% 생성이 안 되면 반복적으로 항체 형성률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구제역에 취약한 곳이 있으면 한 번 더 접종하고 상시 점검하면서 부족한 것은 R&D 투자를 해야 하는데 백신 접종만 하는 선에서 끝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앞으로는 이런 예산도 확보하고 평상시 백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 축산농가에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한가한 얘기로 비친다.”

-AI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백신 접종이 필요한가.

“백신을 접종했다고 병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점이 있다. 항체 형성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수출을 못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있지만 상시적인 취약지역에 대해선 선택적으로 백신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구제역이나 AI가 선진국에서도 발생하지만 우리보다 피해가 적은 것은 밀집사육을 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럽과 미국 모두 밀집사육 상한을 재조정하고 있다. 우리도 상한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축산업 허가를 내줄 때 기준면적당 사육 마릿수를 다시 조사해서 낮출 필요가 있다.”

-개선해야 할 다른 문제점은.

“제일 중요한 게 농장주의 철저한 방역의식이다. 축사시설 소독을 잘하고 외부에서 침투할 수 있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다른 농장이나 외국에 갔다 왔을 때 농장주 스스로 소독을 철저히 하고 방문자 관리와 가축·사료·약품 등의 유통 관리를 잘해야 한다. 선진국 농가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해야 한다. 방역은 전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적당히는 안 된다. 농장주가 철저한 방역의식을 갖도록 하려면 교육을 잘해야 한다. 정부가 교육시스템과 과학적인 시설방역, 신고 대응 체계 등을 갖춰 방역을 상시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AI나 구제역은 겨울에 주로 발생하는데 겨울에 소독하려 하면 소독약이 얼어서 안 된다. 스팀소독이 가능한 시설 등 과학적 방역이 필요하다.”

-축산업 허가제로 바꾼 뒤 농가에 변화가 있다고 보는지.

“조금씩 변화가 있고 앞으로도 진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부에서 기준 공표를 했을 때 농가가 철저히 움직여줘야 하는데 제대로 안 움직이고 있다. 작년부터 소규모 50㎡ 이상 모든 농가에 대해 축산업 허가제를 하고 있다. 프랑스는 농업이 모두 허가제다. 1, 2, 3등급으로 나눠 교육을 더 많이 받고 시설기준도 엄격하다. 우리나라는 신규의 경우 24시간 교육받는데 이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너무 형식적으로 끝난다. 교육제도도 확 바꾸고 소독 및 방역시설 기준과 장비 점검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8년부터 2010년에도 AI와 구제역이 발생했다. 당시를 돌아볼 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시 구제역 방역 기준은 가축과 농업인 중심으로 이동제한을 하는 거였다. 강화도에서 나가거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가축과 사람을 차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동에서 터졌다. 김포에 왔던 사료회사 차가 안동으로 옮겨갔기 때문이었다. 농가와 가축만 이동제한을 할 게 아니라 유통 관련된 모든 차량과 사람도 이동제한을 하고 통제했어야 했다. 방역 권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방역본부 사람이 지방자치단체에 가서 지자체장이나 공무원에게 얘기하면 말을 잘 안 듣는다. 살처분을 하루 만에 하라고 하면 인원이 부족해 못 한다며 3일, 심지어 1주일 걸린다고 얘기한다. 지자체들이 방역본부 지시에 따라 바로 시행하도록 하고 안 하면 징계할 수 있도록 방역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

-장관 퇴임 후 더푸른미래재단을 만들었는데 어떤 조직인가.

“청년 농업인을 농업 기업가로 육성하기 위한 경영교육을 하는 곳이다. 2010년 12월 재단을 만들고 지방의 젊은 농업인들이 교수나 세무사, 변호사 등 전문가의 경영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미래농수산실천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해남과 남해, 서울 등에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직접 거래할 수 있는 ‘행복한 농부의 정직한 가게’를 오픈하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2013년 5월에는 젊은 농업인들이 자조 협동할 수 있도록 영파머스클럽(Young Farmers Club)을 결성해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영파머스클럽은 농업에 관련된 것인데 이를 확산해서 청소년 교육을 좀 더 잘해보고자 한다. 일본에는 후세대 리더 7∼8명을 뽑아 교육하는 마쓰시다정경숙이 있다. 총리도 배출했고 중의원 의원 30여명이 나왔다. 정신, 문화 등을 후세 지도자들에게 교육하는 일을 하고 싶다. 재단을 활성화해서 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

장태평 前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전남 무안 출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서울대 행정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 미국 오리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행정고시 20회로 재정경제원 법인세제과장, 재산세제과장 등을 거쳐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국장과 농업구조정책국장, 재정경제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냈다. 2008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맡았다.

2011년 11월부터 2년 가까이 마사회 회장을 맡았을 때는 경마장을 ‘렛츠런파크’로 명칭을 바꾸고 테마파크로 변신시켜 수익을 다각화했다. 공직에서 퇴임한 뒤에는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 12월부터 청년 농업 기업가들을 육성하기 위한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5년 전부터는 성인 혈액암 환자들을 후원하는 혈액암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한글과 한국 문화의 멋과 우수성을 캘리그래피를 통해 해외에 알리기 위한 사단법인 한글플래닛 이사장도 맡고 있다.












글=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