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대선 판도도 바꿔놓고 있다. 멕시코에서 반(反)트럼프 정서가 들끓는 바람에 좌파 정치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64·사진) 전 멕시코시티 시장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우파 후보에게 두 번 연속 석패한 ‘대선 삼수생’의 화려한 재기다.
멕시코 일간지 엘피난시에로가 최근 실시한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오브라도르 국가재건운동 대표는 33%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1월에 비해 지지율이 4% 포인트 상승하면서 우파 야당 국민행동당의 마르가리타 자발라(50)를 제쳤다. 자발라는 2006년 대선에서 오브라도르를 미세한 표차로 꺾었던 펠리페 칼데론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차기 대선은 내년 7월 치러진다. 6년 단임제여서 엔리케 페냐 니에토 현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다. 니에토 대통령이 소속된 집권 우파 제도혁명당의 유력주자 미구엘 앙헬 오소리오 총(53) 내무장관은 지지율이 20% 안팎으로 3위에 그치고 있다.
오브라도르의 인기를 끌어올린 것은 트럼프에 대한 반발심이다. 트럼프는 멕시코인의 미국 유입을 막기 위해 양국 국경에 장벽을 쌓기로 했고, 멕시코계 불법체류자 색출 및 추방에 나섰다. 멕시코에 공장을 지으려는 미국 기업들에는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트럼프는 최근 니에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거기 나쁜 놈들이 많은데 당신이 막지 못하면 미군을 보낼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12일(현지시간) 멕시코 주요 도시에서 반트럼프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한 시위 참가자는 “멕시코가 이렇게 위협받은 적도, 정부가 이렇게 무력한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멕시코 국민의 분노는 트럼프뿐 아니라 트럼프에게 굴욕을 당한 니에토 정권에도 표출되고 있다. 정권을 향해 커진 불만은 결국 오브라도르가 ‘반트럼프 기수’로 떠오르도록 했다. 그는 여세를 몰아 ‘반트럼프 미국 투어’에 나섰다. 12일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시카고, 엘파소, 피닉스 등 멕시코계 주민이 많은 곳을 나흘간 둘러보는 일정이다.
오브라도르는 트럼프를 가리켜 “인권을 해치는 비인간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했지만 트럼프와 비슷한 부분도 많다. 개방보다 폐쇄를 지향하고 비현실적인 공약을 남발하는 포퓰리스트라는 점에서 그렇다. 오브라도르가 과거 몸담았던 민주혁명당의 한 의원은 “참을성이 없고 오만하며 자기한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모두 적으로 모는 것이 오브라도르의 최대 약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브라도르가 끝내 대권을 잡을 경우 중남미 좌파 벨트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좌파 지도자 중 한 명인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대선 전에 “트럼프가 당선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미 공화당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중남미 진보 정권이 강화된 것과 비슷한 현상이 재연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멕시코 ‘反트럼프 바람’ 대선 삼수생을 1등으로
입력 2017-02-13 17:59 수정 2017-02-13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