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고 모텔가자”… 직장 내 성희롱 왜 근절 안되나

입력 2017-02-13 17:31

“내가 너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거 알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자동차부품 판매업체에 다니던 여성 A씨는 여느 날처럼 출근을 했다가 갑자기 회사 대표의 호출을 받았다. 대표실로 들어간 A씨는 그날 잊을 수 없는 일을 당했다. 대표는 A씨의 손을 잡더니 대뜸 사랑을 고백하며 껴안았다. 이를 뿌리치자 손등을 잡고 입을 맞췄다. A씨는 그날 이후 이 일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고, 회사를 갈 때마다 당시 느꼈던 모욕감이 떠올랐다. 그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회사를 떠났다.

중소업체 직원인 20대 여성 B씨는 어느 날 거래회사의 60대 팀장에게 “술 마시고 모텔가자”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뻘인 팀장은 B씨에게 “사귀자”며 끈질기게 사적인 만남을 강요했다. B씨 역시 회사를 그만뒀다.

편집디자인업체에서 선배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성 C씨는 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성추행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자살까지 시도했다.

직장에서 성희롱을 받은 피해자들이 두 번 울고 있다. 직장을 떠나거나 C씨처럼 극단적 선택에 내몰린다. 맞서 싸워봤자 가해자 처벌은 솜방망이식이고 피해자만 눈치를 보게 된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은 ‘약한 처벌’이 성희롱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꼽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성희롱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해당되는 직장인 1150명(여성 698명, 남성 4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복수응답 설문조사 결과, 피해자의 79.1%는 성희롱 발생 원인이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남성 중심적 직장문화’(75.5%), ‘남성의 약한 성 평등 인식’(69.8%) 등이 뒤를 이었다.

성희롱 피해자들은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피해자 520명의 절반(54%)은 성희롱을 당해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고 답했다. 성희롱을 당해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로는 ‘상대와의 관계를 생각해서’(45.6%)가 가장 많았고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36.3%),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30.6%) 등이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실효성이 작다. 조사대상의 40.5%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교육을 받더라도 만족도는 49.9점(100점 만점)에 그쳤다. 불만족 이유는 ‘성희롱 예방효과 미미’(51.6%), ‘주변 사람들이 교육에 무관심해서’(31.9%) 등이 꼽혔다.

조직문화가 차별적이고 수직적일수록 성희롱이 발생하기 쉬웠다. 윤정숙 특수범죄연구실 연구위원은 “사업장이나 기업조직 자체가 성희롱 행위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성희롱을 대수롭지 않은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지 조직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