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건강] GMO 제품 아세요?… ‘표시 그물’ 숭숭

입력 2017-02-14 05:03
한 시민이 12일 마트에서 식용유를 고르고 있다. 유전자변형식품(GMO) 원재료를 사용했어도 열처리나 발효 등 고도의 정제 과정으로 유전자변형 DNA가 남아 있지 않은 식용유는 GMO 표시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서영희 기자
“유전자변형식품(GMO)을 표시하는 제품도 있어요?” 12일 대형마트에서 만난 김모(34·여)씨는 생명과학을 전공했지만 식품을 살 때 GMO 표기를 전혀 살펴보지 않는다며 이렇게 기자에게 반문했다. 그는 “국가에서 GMO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GMO표시제는 엄연히 있지만, 도저히 GMO 표기가 된 식품을 찾을 수 없다. 그물이 헐거워 물고기가 빠져나가듯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정부가 표시제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기업은 별로 긴장하지 않는다. 여전히 빠져나갈 구멍이 크다.

김모(56·여)씨는 튀김 요리에 쓸 식용유를 진열대에서 집었다. ‘GMO 원재료가 사용된 줄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몰랐다. 알았으면 고민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콩기름에는 GMO 원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유전자변형 DNA가 정제되며 남아 있지 않아 GMO 표시에서 제외됐다고 기자가 설명해주었다. 김씨는 “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건데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책임져주느냐”고 반문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MOP7 한국시민네트워크 등은 2013년부터 3년간 시중에 유통 중인 과자 두부 두유 라면 식용유 장류 당류 빵 건강기능식품 시리얼 팝콘과 각종 통조림 등 681종을 조사했다. GMO 표기가 된 제품은 독일에서 생산된 시리얼 제품 하나뿐이었다. 마트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입 과자나 빵 등 가공식품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해도 10종의 식품에서만 GMO 표시를 찾을 수 있었다.

GMO표시제 강화한다 해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일 가공식품에 유전자 변형 DNA나 단백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GMO 식품이라고 표시하는 ‘유전자변형식품 등의 표시기준’ 고시를 발표했다. 기존에는 주요 원재료 1∼5순위에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들어 있으면 GMO를 표시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사용된 전체 원재료에 표시해야 한다.

다만 열처리나 발효 추출 여과 등 고도의 정제 과정으로 유전자 변형 DNA가 남아 있지 않은 식용유 간장 당류 등은 지금과 같이 GMO 표시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대표적인 GMO 식품인 수입산 콩과 옥수수를 사용하는 제품들이 대거 제외됐다. 체감상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GMO표시제 확대라는 착시를 보이며 국민의 알권리는 더 침해되는 역효과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르면 1주일, 늦어도 상반기 안으로는 새로운 GMO 고시가 적용된 식품을 일반 식료품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며 “적용되는 식품이 많지 않다는 우려도 있지만 앞으로 수입·제조될 식품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수입 GMO 대부분 정제 식품에

지난해 국내에 들어온 식용 GMO는 214만1000t이다. 대두가 98만2000t이고 옥수수는 113만2000t이다. 대두나 옥수수 대부분은 식용유나 간장, 액상과당 등의 가공용 원료로 사용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식용 GMO는 없으므로 수입되는 2만7000t 가공식품 등에만 새로운 GMO 표시 제도가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경실련 윤철한 소비자정의센터 팀장은 “GMO 표기에서 정제된 식품을 뺀다는 것은 GMO 표기를 영원히 안 하겠다는 것”이라며 “실제로 먹는 제품에 GMO가 들어 있는지 알고 싶다는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고시로 소비자의 알권리를 무시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식약처는 “정제된 식품은 GMO 자체가 파괴돼 안전하다”며 “검사가 불가능한 식품까지 GMO 표시를 의무화하면 비GMO 원료를 사용함에 따라 제품 가격 상승 등의 우려가 있어 소비계층 양극화가 예견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GMO 안전성 논란

2012년 프랑스 칸대학 세라리니 교수팀은 실험용 쥐들에게 2년 동안 GMO 옥수수를 먹였다. 그 결과 간, 신장이 손상됐고 종양이 생기는 비율도 높아졌다. 러시아의 예르마코바 박사는 GMO 콩을 실험용 쥐에게 먹인 결과를 2005년 발표했다. 쥐가 임신하기 2주 전부터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는 동안 GMO 콩가루를 먹였다. 그러자 새끼 중 36%가 저체중이 됐고 55.6%가 3주 만에 죽었다. 보통 콩을 먹고 낳은 새끼 쥐의 사망률 9%, 아무 콩도 먹이지 않고 낳은 새끼 쥐의 사망률 6.8%보다 높은 결과였다.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는 앞선 논문에 대해 “세라리니 교수팀 논문의 경우 유럽식품안전국에서 두 차례 검토했는데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됐다”며 “예르마코바 박사의 연구 역시 실험에 사용한 쥐의 개체수가 적어 의미 있는 결론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고 부정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용유나 간장처럼 정제된 GMO 식품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논문은 없지만 식품위생법에 따라 GMO 원재료에 대한 안전성 심사는 사전에 이뤄진다”며 “GMO 안전성 연구는 현재 과학 수준에서 최선으로 이뤄지고 있고 그나마도 대부분 정제해서 섭취하기에 이마저 불안하다면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모든 식품 완전표시제… ‘비의도적 혼입’ 놓고도 갑론을박

유럽연합(EU)은 이미 유전자변형식품(GMO) 원료를 사용한 모든 식품에 GMO 표기를 하는 완전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GMO 식품의 본산지이며 자율표시제를 운영하던 미국도 지난해 7월 완전표시제 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완전표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GMO 안전성 논란 등 예외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선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완전표시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해 6월 20일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발의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은 가공식품도 원재료에 GMO 식품이 활용됐다면 유전자변형 DNA나 단백질 잔류 여부를 고려하지 아니하고 GMO 식품임을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GMO를 독으로 여기는 사회 풍조를 고려해 완전표시제는 시기상조라는 반대 여론도 있다. 또 식용유와 전분당 등에는 당과 지방질에 남아 있지 않아 유전자변형 DNA로부터 안전하다는 논리도 있다. 식품업계의 비GMO 사용을 부추겨 가공식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지난해 8월 16일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완전표시제와 더불어 비의도적 혼입치를 규정했다. 비유전자변형식품(비GMO) 표시를 하고 싶은 경우 유전자 변형 기술을 사용한 원재료의 혼입률이 1000분의 9를 넘지 않아야 한다.

식약처가 지난 4일 발표한 고시에는 비GMO 표시를 하려면 비의도적 혼입도 아예 없어야 한다. 시민단체는 “비GMO 표시를 사용하고 싶어도 비의도적 혼입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규정을 어길 것이 겁나 표시하지 않는 현상이 우려된다”고 반대했다.

유럽은 비의도적 혼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비의도적 혼입치를 0.9% 미만으로 정하고 있다. 식약처는 “국내에서는 GMO 작물을 재배하지 않아 비의도적 혼입치를 인정해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안은 이 같은 비의도적 혼입치를 따로 병기하자는 안을 발의했다.











글=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