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불사(大馬不死).’ 이 말엔 대기업, 대형 은행 등이 파산하면 임직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망하는 쪽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손실을 사회 전체가 떠안는 부작용이 있다. 금융 당국이 ‘공적자금 투입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올 상반기 중으로 회생·정리계획(RRP) 도입과 관련한 입법을 준비 중이다. 핵심은 ‘채권자 손실분담(베일 인·Bail-in) 제도’다. 금융위원회는 해외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베일 인 제도는 은행에 돈을 맡긴 이들도 피해를 나누자는 게 기본 원리다. 긴급 구제(Bail-out)의 반대 개념이다. 대형 은행이 지급불능 상황에 빠졌을 때 채권자의 우선순위에 따라 채권을 상각(장부에서 지워버림) 또는 출자전환(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손실 분담을 강제한다.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논의가 시작됐고 유럽연합(EU) 일부와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이미 도입했다. 미국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하겠다고 한 ‘도드-프랭크법’으로 변제 우선순위를 정해 베일 인 제도와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문제는 범위다. 금융회사에 돈을 맡기거나 빌려준 이들 가운데 어떤 채권자까지 고통을 분담해야 하느냐가 관건이다. 국제기구인 금융안정위원회(FSB)는 은행의 무담보 부채 전체를 베일 인 제도에 포함한다는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우리 금융 당국은 최대 5000만원까지 보장해주는 예금자보호제도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선순위 채권의 베일 인 대상 포함 여부 등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베일 인 제도를 도입하면 정부의 암묵적 지원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시중은행의 영업 환경이 어려워진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베일 인 제도가 도입되면 은행의 신용등급이 낮아지고,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예금자보호제도의 바깥에 위치한 고액 예금자는 높아진 위험에 대한 보상으로 더 높은 예금 금리를 요구하거나 안전한 은행으로 돈을 옮기게 된다. 심한 경우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 벌어지는 등 금융 시스템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베일 인 제도를 국내 금융시장에 도입하기 위해선 은행의 자산 건전성과 자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 비율이 높은 은행일수록 손실 흡수 능력도 크기 때문에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이다. 은행 입장에서도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비이자 부문 사업의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공적자금 ‘묻지마 투입’ 차단 ‘베일 인 제도’ 도입 검토
입력 2017-02-14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