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상숙 <4> 막노동 청년들 도시락 들고 찾아가자 “마마”라 불러

입력 2017-02-14 00:03
말레이시아 김상숙 권사 집에 모인 말레이 청년들이 교제하고 있다.

홍콩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역과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다. 바로 말레이시아로 우리 가족을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말레이시아에서 선교를 계속할 수 있도록 남편의 직장에 은혜를 내려주셨다. 영어가 통하는 홍콩과 달리 말레이시아는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복음 전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내 나이 48세.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간단한 회화가 아니라 현지인과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고급 회화까지 구사해야 했다. 일단 어학원에 다니며 설거지나 집안일을 하면서 단어를 외웠다. 3개월쯤 지나자 말레이어로 100개의 성경구절을 외울 수 있게 됐다.

말레이시아는 동서로 구분돼 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있는 곳은 서 말레이시아, 바다를 경계로 동 말레이시아가 있다. 동 말레이시아는 서쪽과 달리 크리스천들이 많이 거주했다. 반면 쿠알라룸푸르는 이슬람교가 강해 무슬림에게 전도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말레이어를 공부하면서 현지 청년들과 성경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에 교회를 찾았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영어가 통했지만 젊은이들은 영어를 전혀 몰랐다. 말레이어를 배운지 6개월 정도밖에 안 된 실력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하자니 말레이어로 만든 교재 내용을 전부 외웠다. 유창하지 않은 언어 실력을 보충하려면 그 방법밖엔 없었다. 말레이어를 배울 때부터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그 다음엔 성경공부 교재를 암송하니 말레이어 학습에 상당한 가속도가 붙었다.

이 교재를 들고 말레이시아 현지교회인 SIB교회를 찾았다. 목사님은 교재가 너무 좋다며 다른 교인들을 위해 책으로 만들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성경공부 교재 제작을 시작했고 현지인 청년의 도움을 받아 10단계 성경공부 교재와 창세기, 출애굽기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어 3000권을 출간해 SIB교회에 증정했다.

그 즈음 말레이어를 좀 더 익히고 복음도 전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만났다. 홍콩에 필리핀 가사 도우미가 와 있는 것처럼 말레이시아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원래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이주했기 때문에 말이 비슷했다. 나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일하고 있는 공사판을 찾아갔다.

그러다 ‘요하니스’라는 청년을 만나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을 나누던 중 “우리는 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한 가족이나 다름 없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요하니스는 “당신은 엄마 같아요”라고 했다.

그 말은 내 영혼을 흔드는 것 같았다. 열악한 건축 현장에는 아침밥도 거른 채 일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공사 현장을 찾아가 청년들과 같이 점심밥을 먹고 성경을 나누기로 결심했다. 그 다음 주에 요하니스와 다니엘 등 청년들을 만나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들은 “함께 일했던 스물한 살의 한 형제가 어제 병으로 죽었다. 이곳에 온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날부터 요하니스와 그의 동료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도시락을 싸들고 찾아갔다. 40명 남짓한 청년들은 나를 친엄마처럼 반겼다. 얼마 후 그들은 나를 ‘마마’라 불렀다. 그때부터 내 별명은 ‘마마 킴’이 됐고 지금도 나를 아는 외국인들은 그렇게 부른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