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정희정부의 통치 방식을 답습하다 감옥에 가 있다. 특별수사팀이 최근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는 여전히 유신시대에 갇혀 있는 그의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김 전 실장은 46년 전 평검사일 때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었다.
그는 현 정부와 이념 성향이 다르거나 야권에 우호적인 이들을 종북 내지 좌파 세력으로 규정하고 집요하게 탄압을 꾀한 것으로 수사에서 확인됐다. 2013년 8월 비서실장에 임명된 직후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그는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며 좌파 척결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9월 회의에서는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은 종북세력이 의도한 것”이라며 “이 영화 제작자와 펀드 제공자는 용서가 안 된다”고 발언했다. 12월에는 “반국가적·반체제적 단체에 영향력이 없는 대책이 문제다. 하나하나 잡아나가자”고 했다.
곧이어 “반정부·반국가적 성향의 단체들에 현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실태를 전수조사해 조치를 마련하라”는 주문이 내려졌다. 특검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가 김 전 실장의 이런 지시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김 전 실장이 이를 ‘빨갱이 말살정책’이라 칭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는 2014년 들어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좌파들은 잘 먹고 잘사는데, 우파는 배고프다”고 질책했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민간단체 보조금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좌파 성향으로 지목된 개인·단체 등에 지원된 예산을 ‘문제 예산’으로 명명했다. TF가 작성한 ‘문제 단체 조치 내역 및 관리 방안’ 보고서는 김 전 실장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보고 됐다.
김 전 실장은 같은 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유족 편에서 정부를 비난한 이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는 지침도 문화체육관광부에 하달했다. 이에 미온적이던 문체부 간부 3명은 ‘성분불량자’로 분류돼 모두 공직을 떠나야 했다.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사건을 담은 영화 ‘다이빙벨’ 상영이 결정되자 “문화예술계 좌파의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명령이 내려간 사실도 드러났다.
이처럼 김 전 실장은 1년6개월의 청와대 재직 기간 지속적으로 현 사회에 유신체제를 주입하려 했다. 그의 공소장에는 헌법 제11조 1항(평등 원칙)과 22조(학문과 예술의 자유) 위배 사실이 적시됐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며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구치소로 변호사들을 불러 재판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
글=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유신시대’ 사고방식에 갇힌 王실장… “영화 ‘천안함…’ 제작 용서 안돼” “반정부 인사 지원 배제”
입력 2017-02-13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