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뿐인 사랑’ 퍼즐 깔려있는 러브 스토리… ‘기린의 날개’ 사회 병폐 꼬집는 미스터리

입력 2017-02-13 18:20

추리소설 같은 히라노 게이치로(42)의 러브 스토리를 읽을까. 훈훈한 가족애가 바닥에 밴 히가시노 게이고(59)의 미스터리를 읽을까.

개성이 사뭇 다른 두 일본 작가의 신간 장편소설이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 아쿠타가와 수상 작가인 히라노의 첫 연애소설 ‘형태뿐인 사랑’(아르테)과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의 가가 형사 시리즈 9번째인 ‘기린의 날개’(도서출판 재인)가 그것이다.

13일 출판계에 따르면 두 소설은 장르를 달리하면서도 비슷하게 수렴되는 지점이 있다. 하나는 연애소설이면서 형사물 요소가 가미되었고, 다른 하나는 추리소설이면서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서다.

먼저 히라노의 ‘형태뿐인 사랑’. 23세에 발표한 데뷔작 ‘일식’으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히라노는 인간의 본성, 내면의 문제를 탐구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첫 연애소설이라기에 달콤쌉싸름한 스토리가 펼쳐질 거라고 기대했다면 배반감을 느낄 수 있겠다. 사랑에 관한 히라노의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무거운 것은 아니며 추리물을 읽어가듯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은 ‘돌싱’인 산업디자이너 아이라 이쿠야. 어느 여름 소나기가 퍼붓는 날 작업실 앞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 현장을 목격한 그는 구급차를 부르게 된다. 사고 희생자는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인기 여배우 가네세 구미코. 아이라는 한쪽 다리를 잃게 된 가네세의 의족 디자인을 맡게되는데….

사랑이 뭐냐는 첫 아내의 질문에 “물이나 공기처럼 죽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던 아이라. 그러던 그는 가네세와 새로운 사랑에 눈뜨게 되고 마침내 사랑의 진실과 힘을 믿게 된다.

가가 형사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히가시노의 작품 ‘기린의 날개’는 인간미 넘치는 추리물을 써온 작가의 힘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소설이다. 어느 늦가을 밤, 도쿄 한복판 니혼바시 다리에서 중년 남자가 가슴을 칼에 찔린 채 순찰 중인 경찰에 의해 발견된다. 그는 피를 흘리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다리 중앙 기린 조각상까지 와서 기도하는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사망자는 건축 부품 제조회사의 본부장인 아오야기 다케아키. 용의자는 피해자가 다니던 회사에서 계약직 근로자로 일하다가 6개월 전 현장 사고로 다친 후 회사 측으로부터 산재처리도 받지 못한 채 해고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건이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종결되려는 시점에서 용의자의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확인되며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진다.

이 지점에서 가가 형사의 활약상이 빛을 발한다. 그의 끈질긴 탐문 끝에 사망자가 왜 기린 조각상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는지가 밝혀지며 사건은 다시 반전을 거듭한다. 소설 곳곳에는 핵가족화와 배금주의, 양극화 등 일본 사회의 병폐에 메스를 가하는 작가의 시선이 배어있다. 추리소설가이면서 ‘사회파’ 작가로 분류되는 히가시노의 브랜드가 느껴진다.

두 소설은 모두 무겁지 않으면서 마음까지 데워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주말 오후 영화관에 가는 것도 귀찮아지는 날이라면 소파에 몸을 묻고 읽어보기를 권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