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거짓말탐지기는 거짓말 안 한다?

입력 2017-02-13 05:01
수사기관 활용 빈도 점차 높아지는데… 거짓말탐지기는 거짓말 안 한다?

직장인 강모(46)씨는 지난해 12월 초 새벽 4시쯤 남녀가 떠드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층간소음이었다. 그는 아랫집으로 찾아가 “조용히 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1시간 뒤 초인종이 울렸다. 경찰이 찾아왔다. 아랫집 주민이 경찰에 “윗집 사람이 시끄럽다며 흉기를 들고 찾아와 위협했다”고 신고를 했다. 경찰 조사에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자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진행됐다. 거짓말 탐지기는 강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정했다. 검찰에 불려가게 된 강씨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 하나만으로 내 혐의가 확정되다니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이혼 후 혼자 지내던 임모(50)씨는 2013년 우연히 알게 된 박모(51·여)씨와 마음이 맞아 성관계를 맺었다.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였지만 박씨는 임씨를 강간죄로 고소했다. 거짓말 탐지기도 임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리켰다. 결국 기소됐지만 재판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임씨의 변호를 담당했던 김광삼 법무법인 더쌤 변호사는 “거짓말 탐지기의 거짓 판정이 검찰 기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경찰과 검찰이 거짓말 탐지기를 수사에 동원하는 사례가 늘면서 불만도 커지고 있다.

경찰청은 수사과정에 거짓말 탐지기를 활용한 건수가 2014년 8460건에서 지난해 9845건으로 약 1400건 늘었다고 12일 밝혔다. 매년 증가 추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2015년까지 매년 평균 800건 수준이었던 거짓말 탐지기 활용이 지난해에는 1000건으로 크게 늘었다. 거짓말 탐지기는 주로 성폭력 사건과 같이 은밀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나 양측 진술이 심하게 엇갈릴 때,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에 쓰인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는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심증이 물증으로 바뀌는 중요한 변곡점 역할을 한다. 32년 경찰 경력의 김복준 중앙경찰대 교수는 “거짓말 탐지기가 거짓말로 판정해주면 초기 수사단계에서 조사관들에게 심증을 주고 추궁하는 근거가 된다”며 “증거능력은 없지만 재판과정에서도 법관의 심증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정황증거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거짓말 탐지기의 정확도다. 전문가들은 거짓말 탐지기의 정확도를 90∼95%로 본다. 10건 중 1건은 틀릴 수 있다는 얘기다. 임씨처럼 거짓말 탐지기 결과 유죄였으나 무죄로 판결이 나는 경우가 그렇다. 이승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아무리 정확도가 높은 수사기법이라 해도 조금의 불확실성이 있다면 맹신해서는 안 된다”며 “한 사람을 범죄자인지 아닌지 확정하는 일인데 5∼10%라도 간과할 수 없다”고 전했다.

검사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노련한 질문 기술’이 필요하다. 범행을 직접적으로 추궁해서는 안 되고, 자극적인 표현보다 중립적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등 검사관의 숙련도가 중요하다.

국내 수사기관에선 거짓말 탐지기 전문 검사관을 양성하려는 노력이 미흡하다. 경찰 검찰 국방부 국과수가 각각 검사관을 채용해 각자 방식대로 교육하고 있다. 경찰은 채용된 경찰관 중 과학수사팀을 선별해 국과수에서 교육받게 한다. 검찰은 자체 교육을 실시한다.

검사관 수도 부족하다. 경찰의 경우 전국 17개 지방청에서 34명의 검사관이 1인당 연간 200건 넘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 경찰청은 “상반기 6명을 더 채용하는 등 올해 검사관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