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보편적 가치’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핵 확산에 반대한다든가, 자유무역을 통한 번영을 추구한다든가, 기후·환경 문제에 공동 대처한다는 식의 어떤 지향점을 찾고 어떻게 보조를 맞출지 논의하는 접근법은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교도통신이 전한 회담 내용 9가지에 가치를 설정하는 표현은 미사여구로도 들어 있지 않다. 철저히 국익을 챙기는 두 정상이 철저히 뭔가를 주고받은 자리였다. 최고경영자(CEO)들의 회담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미·일 정상회담은 동북아 질서를 좌우하는 힘을 가졌다. 우리는 이런 나라들을 상대로 국익을 지키는 외교에 나서야 한다. 특히 트럼프의 미국을 대하는 일은 ‘거래’에 가까울 거라는 게 분명해졌다. 트럼프와 아베의 만남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두 정상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굳건한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 민감한 경제 문제는 일단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아시아·태평양지역 안정의 주춧돌이라 표현했고, 중국과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분쟁에서 일본 손을 들어줬으며, 방위비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무역 역조, 엔저 환율 등 일본이 부담스러워하는 경제 이슈에선 직접적인 마찰을 피했다. 두 가지가 작용했을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본의 필요성과 일본이 준비한 선물. 아베 총리는 ‘조공외교’란 비판이 나올 만큼 선물 보따리를 챙겨 갔다. 미국에 70억 달러를 투자해 7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압박을 막아내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데 필요한 미국의 후원을 확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겨냥해 말해온 통상 문제를 일단 넘긴 것 역시 그가 받아낸 답례품이다. 이렇게 주고받으면서도 경제적 이익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상호적인 무역관계”를 주장하며 일본이 선호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대신 양자협정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고, 환율 문제도 손 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은 이제 미국·일본과 중국의 대결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경제·통상 분야에선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견제하고 자국 경제를 지키려 더 노골적으로 다툴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그 압력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일본은 다시 한번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섰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힘을 앞세워 거래를 요구하는 미국에 무엇을 제시하고, 그에 반발해 치졸한 방법도 마다 않을 중국과는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은 지금 새로운 질서를 놓고 긴박하게 움직이며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박근혜정권의 실패를 속히 딛고 일어나 새로운 리더십이 구축됐을 때 제대로 대처하려면 치열한 고민을 통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사설] 국익 위해 철저히 주고받은 미·일 정상회담
입력 2017-02-12 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