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의 군대 축구 이야기를 여성들이 지루해하는 것처럼 여성이 임신과 출산 경험을 이야기하면 남성들은 어딘가로 사라진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일단 흥미가 안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일반적 사실이라 할 수 없는 것은 여군도 있고, 여성 축구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 중에도 임신과 출산에 관심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구성원 다수가 겪고 지나온 것들을 사회에선 ‘보편’이라 하고, 보편의 범위에 있지 않은 것을 말할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그런 신중함에 신중함을 더하다 보니 이런 단어를 만나게 되었다.
‘PC하다’라는 말. 여기서 ‘PC’란 ‘Political Correctness’인데 가장 원뜻에 근접한 번역은 ‘도의적 공정성’이다. 역사가 있는 단어여서 좀 찾아보았다. 1980년대 미국사회에 만연해 있던 성, 인종, 능력, 외모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던 ‘PC운동’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도에 ‘주민등록번호 첫째자리 철폐를 위한 만인 집단 진정서’ 시민운동이 최초의 ‘PC운동’이라 부를 수 있다고 한다(네이버 세계문화지식백과).
나는 내가 쓰는 글들이 도의적 공정성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보편적 정서를 건드려 많은 이들이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것은 모순이다. 내가 속한 이 사회가 말 그대로 완벽하게 ‘PC한 사회’여야만 가능할 일이다. 한국사회의 ‘보편 정서’라는 것도 성별, 세대별, 능력별로 너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날, 시를 쓸 때의 나는 도의적 공정성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보편적 정서에서 한참 멀리 가 있곤 한다. 놀라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면 어느 순간 굉장히 딱딱하고 답답한 벽을 마주한다. 아무래도 정치적으로도 불안하고, 한 여성으로서는 작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계기가 된 것 같다. 혼란은 생각의 폭발과 개인의 한계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힘들더라도 개인이든 이 사회든 끝까지 도의적인 정당성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도의적으로 공정하다’는 말
입력 2017-02-12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