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머물면서 인도에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시아 곳곳에 출장 다니는 남편을 통해 들은 인도인의 삶이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거리마다 넘치는 가난한 사람들, 물이 귀해 더러운 웅덩이에서 몸을 씻으며 구걸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땅, 나는 하나님께 인도에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주님의 뜻하심이 있다면 인도를 둘러보게 해주세요. 원하신다면 비행기표를 보내주세요. 그러면 주님 뜻인 줄 알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기도했을 때다. 남편 동료 중에 알록이라는 인도인이 있는데 그가 자주 이용하는 비행사에서 조건부 인도행 왕복 티켓이 왔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내가 인도에 가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은 알록은 남편을 통해 티켓을 보내줬다.
인도를 향한 길은 결과적으로 인도 아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인도에 다녀온 후 주위 사람들과 힘을 합해 학교와 교회가 함께 있는 베다니스쿨을 짓는 동기도 됐다. 1994년 설립된 이 학교에선 수많은 힌두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더 테레사와의 만남을 잊을 수 없다. 테레사 수녀를 만난 것은 내 삶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캘커타(현 콜카타) 슬럼가에 위치한 숙소에서 만난 인류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는 당시 83세였다. 등이 구부정했고 여타 인도인처럼 맨발로 나왔다. 수녀님은 내게 입을 맞추었고 목걸이를 선물했다.
마더 테레사는 90년까지 50만명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2만명의 슬럼가 어린이들을 위해 124곳의 학교에서 가르쳤다. 9만명에 달하는 한센병 환자들이 치료를 받도록 도왔다. 이 사역을 시작할 때 그에겐 어떤 계획이나 확보된 기금 같은 게 없었다. 오직 믿음뿐이었다.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신실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나는 주님의 손 안에 있는 연필입니다(We are called upon not to be successful but to be faithful. I am a pencil in HIS hand).”
나와 만나는 순간에도 테레사 수녀가 반복했던 말이 있다. “우리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일을 합시다(Let’s do something beautiful for God).” 그분은 가는 곳곳마다 이 글귀를 붙여 놓았다 한다.
이제껏 내 믿음의 모델은 하나님의 실체를 보여준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였다. 그런데 마더 테레사를 만나고 나니 살아있는 뮬러를 만난 것 같았다. 수녀들의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고아원에는 갓난아기와 장애인들이 모여 살았다. 그리고 마당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는 성경말씀이 쓰여 있었고, 그 옆에는 “내가 목마르다”(요 19:28)고 적혀 있었다.
나는 테레사 수녀에게 “행복한 일생이셨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의 행복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믿음에 의심이나 불행 따위는 없습니다.” 그는 매일의 기도와 묵상을 통한 영적 양식의 공급 없이는 한 시간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말도 했다.
마더 테레사와의 만남을 마치고 나는 교회에 앉아 울었다. 나의 신앙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선교 사역을 하면서 어떤 일에도 으쓱대지 않게 된 것은 이 만남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주님이 하신 것을 목도하는 것뿐이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상숙 <3> 테레사 수녀 “우린 성공 위해 부름 받은 거 아니다”
입력 2017-02-13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