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또 한번 제동이 걸렸다. 샌프란시스코 제9연방항소법원은 ‘미 전역에서 행정명령 시행을 잠정 중단하라’는 하급심 결정을 인용했다. 법무부 항고는 기각됐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은 추진동력을 크게 상실했다. 트럼프는 즉각 상고를 시사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다시 빗장을 걸어 잠글 가능성은 여전한 것이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행정명령의 존폐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신임 대법관 인준에 난항이 예상된다.
9일(현지시간) 열린 항고심 선고공판에서 합의부 판사 3명은 만장일치로 기각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연방정부는 행정명령의 시행 중단으로 국가 안보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을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본안사건(행정명령 위헌소송) 승소 가능성, 회복이 불가능한 피해 여부, 제3자 피해 여부, 공익 등 4가지 쟁점을 검토했다. 다만 재판부는 ‘행정명령은 무슬림 차별 조치’라는 주장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 이란 리비아 등 중동·북아프리카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과 비자 발급을 일시적으로 금지한 행정명령의 효력은 회복되지 못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발동된 반이민 행정명령은 전 세계적인 혼란과 미국 안팎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워싱턴주와 미네소타주는 지난달 30일 행정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지난 3일 시애틀 연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법무부는 트럼프와 국무부, 국토안보부를 대리해 즉각 항고했다.
이날 기각 결정에 항소법원을 찾은 반트럼프 시위대는 환호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는 ‘3대 0’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인간을 종교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법원이 지지했다. 차별은 테러리스트가 하는 일이고, 테러리스트가 하길 바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기각은 트럼프에게 교훈을 줄 것이다. 손상을 입은 미국의 명성이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는 거세게 반발했다. 트위터를 통해 “법정에서 보자”며 “국가 안보가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기각 결정을 ‘정치적’이라고 주장하며 “(대법원에서) 쉽게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CNBC방송은 전했다.
행정명령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사실상 연방대법원으로 공이 넘어갔다. 이에 최근 지명된 닐 고서치 대법관 후보 인준 문제가 더욱 첨예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현재 보수 4명 대 진보 4명인 대법관 이념 구도가 보수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고서치의 인준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상고심을 1, 2심처럼 신속하게 처리할지는 알 수 없다. 대법관 9명 중 1명이 공석인 상태에서 결론을 낸다면 이른 시기에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고서치 후보 인준 이후 사건을 처리한다면 의외로 긴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反이민 행정명령’ 또 제동… 트럼프 “대법원서 보자”
입력 2017-02-11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