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정, 아노미… 표류, 한국號

입력 2017-02-10 17:56 수정 2017-02-10 21:22
리더십 공백 상태인 ‘대한민국호’의 위기론이 현실화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대내외 현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위태로워졌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현 상황은 국난(國難)에 준하는 극한의 위기다.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꽁꽁 얼어붙은 지 오래고, 축산농가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은 구제역 확산으로 시름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반도·동북아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 한국은 외딴섬이 돼버린 상태다.

한국 경제는 5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반면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4년여 만에 처음 2.0%대로 급등하는 등 체감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대기업 역시 투자보다 ‘두고 보자’는 관망세로 돌아선 지 오래다.

위기 극복 및 비전 제시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할 주체들은 방향타를 잃은 채 대응에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행정부를 총지휘해야 할 황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 여부에 모호한 입장만 되풀이하며 논란을 부풀리는 중이다. 국회 역시 여러 시급한 민생입법 논의 진전은커녕 대선 승리를 위한 손익계산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장밋빛 미래’ 제시에만 급급하다는 비판론도 제기된다.

행정부 공백, 공직사회 기강 해이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공백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부터 각 부처 장관, 헌법재판소장까지 ‘권한대행 체제’다. 사상 최대 피해를 낸 AI와 구제역 확산에도 정부의 현황 파악과 대책이 한 박자씩 늦고 있다. 국회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최근 공직사회에선 ‘복지안동’(伏地眼動·엎드려 눈알만 굴린다) ‘낙지부동’(낙지처럼 갯벌 속에 숨는다)이라는 말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부처 업무보고 역시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외교안보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컨트롤타워 부재 탓에 대외관계의 안정적인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행정부 출범 직후 한·미 관계 전반을 새롭게 설정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지만 양국 간에는 동맹 강화 등 ‘립서비스’ 수준의 합의만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 결정, 위안부 소녀상 문제 등으로 급격히 냉각된 한·중, 한·일 관계 관리 역시 필요한 상황이지만 외교 채널을 통한 설득 및 협상 등은 전무한 상태다.

정계 원로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협치를 통해 현 위기를 해결하고, 국민들에게 미래상을 제시하는 본연의 임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10일 “현 비상사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과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며 “이들은 이런 위기 상황을 빨리 해결하자는 민심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도 “(정치권과 정부가) 국민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현 상황은 사실상 국정이 올스톱된 상황”이라며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국정은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야당에 협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협치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남혁상 조성은 기자, 세종=서윤경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