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한민국] 기승전‘대선’에… 멈춰버린 개혁시계

입력 2017-02-11 05:01

국회와 정치권이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 두 달이 지났다. 박 대통령 탄핵안 통과 직후 정치권은 “촛불민심을 개혁입법으로 승화시키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후 입법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여야의 지루한 공방 속에 ‘식물국회’라는 비판만 계속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정국 장기화로 누적된 국민들의 피로감과 분노가 국회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혁입법을 목표로 열렸던 지난 1월 임시국회는 비쟁점 법안 일부만 통과시키는 데 그쳤다. 의미 있는 합의사항은 수년간 끌어왔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타결이 고작이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상법 개정, 선거법 개정 등 핵심 쟁점 법안들은 여야의 확연한 입장차만 확인한 채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빈손 국회’의 가장 큰 원인은 정치권의 합의 능력 부재다. 특히 바른정당의 탄생으로 국회가 4당 체제로 재편되면서 쟁점 법안 처리가 더 어려워졌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임시국회를 결산하면서 “4당 중 한 당만 반대해도 법안을 처리하기 힘들고, 당내 30명 중 10명만 반대해도 당론을 정하기 어렵다. 결국 10명만 반대해도 법안 통과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국회선진화법이 비효율을 양산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국회가 쟁점 법안에 대해 타협하는 전통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 후보의 대선 공약과 연계된 입법 전쟁이 타협을 가로막는 경우도 많다. 일각에선 “정제되지 않은 대선 주자들의 공약이 남발되면서 주요 쟁점에 대한 합의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김선동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야당이 정치관계 법안을 개혁입법이라고 주장한다”며 특검법, 방송법 등을 ‘과도한 입법 사례’로 들었다.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퇴임 이후 현실화된 공백 사태 역시 국회가 자초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야권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신속한 탄핵 인용만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야권 내부에서조차 “애초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일종의 ‘과도내각’으로 대체해 놓았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가 여야 합의를 통해 박 전 소장과 3월 퇴임하는 이정미 재판관 후임을 추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야 합의로 황 권한대행과 후임 재판관 임명을 논의했다면 재판관이 7명으로 줄어드는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이후 최종 결정권을 쥐게 된 국회가 재판관 부족 문제를 방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한철 전 소장도 퇴임 직전 “연속해서 공석이 발생하는데 10년 이상 아무런 입법조치도 없이 방치한 국회와 정치권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야 4당은 10일 전날에 이어 이틀째 각 당 원내수석과 개별 상임위 간사가 개혁입법 현안을 집중 논의하는 ‘4+4’ 회동을 이어갔다. 각 당 지도부가 권한을 위임해 개혁입법 합의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여야 지도부는 “2월 국회마저 빈손으로 끝나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일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13일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4당 원내대표가 만나 쟁점 법안 처리 방안을 논의한다. 이번 회기가 대선 전 개혁입법을 처리할 마지노선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