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유성열] 재앙 번져도 ‘존재감 없는 김재수’

입력 2017-02-10 17:58 수정 2017-02-10 21:21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는 백신을 녹이지 않고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지난 7일 기자들 앞에서 이같이 말했다. 농가의 도덕적 해이로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논란이 된 소 항체 형성률 표본조사 방식에 대해선 “전체 농가에서 표본 10%를 추출한 것은 굉장히 많은 숫자”라고 강조했다.

방역은 국가의 책임이다. 헌법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는 방역에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되돌아보면 박근혜정부는 유독 책임부터 떠넘기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듯이 사태가 터지고 나면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려 애썼다. 당장 대통령부터 그랬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사회 전반에 불신이 만연하게 됐다.

그 구태를 끝내자는 염원이 모여 대규모 촛불집회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방역의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변화를 거부하는 듯하다. 올해 겨울 구제역만 해도 돼지 위주의 땜질식 처방, 엉터리 통계수치를 맹신한 탁상행정의 결과라는 게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앞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대한 대응은 골든타임을 놓쳐 사상 최악의 피해를 냈다. 농가에 책임을 떠넘겨 일단 비난에서 벗어나고 볼 일이 아니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시끌벅적한 분위기 가운데 취임했다. 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모교 동문회 SNS에 “시골 출신에 지방 학교를 나온 ‘흙수저’라고 나를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글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부적격 의견으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오기로 임명을 강행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 해임건의안도 거부했다.

박근혜정부 아집의 상징이 된 김 장관이 최근에는 오히려 조용하다. 방역 주무부처의 무능이 전국적 재해로 이어지고 있지만 장관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농식품부는 지난 3일 ‘김 장관, 폭넓은 현장 소통 행보로 실행·신뢰·배려의 농정 실천’이라는 ‘낯 뜨거운’ 보도자료를 냈다.

이미 대권행보에 나섰다고 평가받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9일 “이번 주 내로 구제역 백신 접종을 마치라”는 지시를 내렸다. 현재 백신은 물량이 부족해 긴급수입을 추진 중이다. 그가 백신 수급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내각 인사들의 관심이 ‘콩밭’에 가 있는 사이 축산 농민들은 자식 같은 가축을 잃고 피를 토하고 있다.

유성열 경제부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