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소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전국 축산농가가 초토화되고 있다. 이제는 돼지 구제역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과거 구제역 피해가 컸던 돼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방역을 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이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 수준이다. 전국 규모의 가축질병이 매년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의 대비 수준은 엉터리였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올겨울 구제역이 돼지농가로 퍼질 경우 2010∼2011년 사상 최악의 피해를 냈던 구제역 대란이 재연될 수 있다. 당시 구제역은 전국 6241개 농가를 휩쓸었고, 소·돼지 348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매몰지에서 유출된 침출수로 토양이 오염되는 등 심각한 2차 오염 피해도 잇따랐다.
돼지는 소보다 구제역 확산 속도가 빠르다. 돼지의 구제역 전파력은 소의 100배에서 최고 30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를 빽빽하게 가둬 키우는 방식으로 돼지를 사육하다 보니 한 마리가 걸리면 농장 내 모든 돼지로 순식간에 번진다.
게다가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더라도 돼지는 항체 형성률이 소보다 떨어진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돼지농가의 항체 형성률은 75.7%로 소농가의 97.5%보다 크게 떨어진다. 여기에다 ‘소의 항체 형성률 97.5%’도 믿을 수 없는 수치라는 게 이미 밝혀진 상황이다. 이번 구제역 발생 농장을 대상으로 재검사를 실시해 보니 충북 보은은 20%, 전북 정읍은 5%의 항체 형성률이 나타났다. 따라서 검사를 더 철저하게 했다고는 하지만 돼지도 실제 항체 형성률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백신의 효능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형 바이러스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도 연천 젖소농가의 A형 항체 형성률은 52%로 추정된다. 보은·정읍에 비해 비교적 높은 항체 형성률에도 구제역이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현재 전체 소에 접종하기 위한 백신도 부족해 긴급하게 수입을 추진 중이다. 돼지 전체를 대상으로 접종하게 된다면 백신대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2000년 창궐한 구제역은 지난해까지 모두 8번 터졌다. 16년간 살처분 비용과 생계안정자금 등 구제역과 관련해 투입한 세금만 3조3127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추가로 들어간 각종 사회적 비용은 추산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여전히 ‘땜질’ 일색이다. 10일 열린 물가관계차관회의 겸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는 소·돼지고기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수입을 촉진하는 등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는 사이 충북 보은의 두 번째 구제역 의심사례도 O형 구제역으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AI와 구제역 사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정부의 무능은 극에 달한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 현상과 무관치 않다.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에서 이뤄진 올해 업무보고에서 부처는 ‘알맹이’ 없는 시한부 재탕 정책만 남발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칼날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경제부처는 “준비하겠다” “협의하겠다”는 원론적 수준의 대책만 내놓고 있다. 저출산 대책과 4차 산업혁명 대응방안도 뚜렷한 내용 없이 검토와 추진 수준에 머물러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종=유성열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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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 소 → 다음엔 돼지?… 터지면 속수무책
입력 2017-02-10 17:57 수정 2017-02-10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