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별들 중 하나에도 누군가 살고 있진 않을까. 무수한 별들이 수놓은 경이로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번쯤 떠올렸을 법한 질문이다. “우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넓어. 그런데 이곳에 우리만 살고 있다면, 그건 공간 낭비가 아닐까?”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97년 영화 ‘콘택트’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영화의 원작인 동명 소설을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대답이기도 하다.
수십 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온 전파를 해독하는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 ‘콘택트’ 이후 20년 만에 또 다른 할리우드 SF ‘컨택트’가 국내 극장가에 찾아왔다. 영어 원제는 ‘도착’을 의미하는 ‘Arrival’이다. 충격적 반전을 담은 ‘그을린 사랑’, 휘몰아치는 긴장감이 압도적인 ‘시카리오’ 등으로 호평 받았던 드니 빌뇌브 감독이 테드 창의 중편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각색했다.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과 시간이 자극하는 상상은 지금까지 문학과 영화를 통해 수없이 변주돼 왔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터스텔라’까지, 혹은 ‘E.T’에서 ‘인디펜던스 데이’ ‘아바타’까지. ‘컨택트’는 외계인과의 만남, 시간이동이라는 SF 장르의 단골 테마를 다뤘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굉장히 아름답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느 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지구 위 12개 지점에 거대한 비행물체가 동시에 나타난다. 검은 색의 단순하고 길쭉한 형체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연상케 한다. 이들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떤 목적으로 온 것인지 알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즈(에이미 애덤스)와 이론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이 미국 정부에 의해 투입된다. 인간과 전혀 다른 종류의 생명체라도 이진 수열 같은 수학적 방식으로 소통이 가능할 거라 자신하는 이안에게 루이즈는 “그냥 그들과 말을 해보는 게 낫다”고 대꾸한다.
이처럼 영화는 ‘인터스텔라’ ‘마션’ 등 최근 작품에서 상대성이론이나 우주 환경에 대한 과학적 지식들이 전면에 부각되었던 것과 달리 언어와 기억에 관한 사유로 채운다. 언어체계뿐 아니라 발성기관조차 완전히 다른 존재와 과연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지구인들의 서로 다른 언어는 오해와 분쟁만 낳는다. 외계인이 출현한 12곳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 캠프는 여러 대의 모니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국의 언어들로 뒤엉켜 마치 붕괴 직전의 바벨탑 같다.
이 영화의 독창성은 새로운 차원의 언어에 대한 놀라운 상상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재현해내는 데 있다. 루이즈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구분되는 직선적, 순차적인 인간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는 원형적, 동시적 언어를 습득하게 되면서 기억을 통해 시간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사고체계는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주된 키워드로 제시한 것이다. 언어는 사고의 반영이라는 일반적 관점과 반대다.
사실 미래를 보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울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말의 내면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가령, 지난 대선 토론에서 어느 후보가 쏟아냈던 말들 속에 이미 미래의 그림자가 비쳐있던 것은 아닐까. 언어 속 타임머신은 영화의 마지막 루이즈의 대사처럼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만약 미래를 알 수 있다면, 당신의 결정을 바꾸시겠어요?”
<영화학 박사>
[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영화 ‘컨택트’] 말 속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입력 2017-02-13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