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국정농단 의혹 규명 특검’ 사무실 앞. 취재진 앞에 선 유재경 미얀마 대사가 입을 열었다. “지금도 누가 저를 (미얀마 대사로) 추천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약 3시간 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유 대사의 발언을 뒤집었다. “유 대사 본인이 최순실의 추천으로 대사가 됐다는 점은 현재 인정하는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특검 조사실에 불려간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다.
#2. 금 가공업체 직원이었던 A씨. 그는 금 추출사업에 투자하면 매월 투자금의 5%를 수익금으로 주겠다며 같은 교회에 다니는 성도 3명으로부터 6년 동안 6억원 넘게 받아 챙겼다. 결국 사기죄로 기소돼 지난해 말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거짓말 홍수 시대다. 최근 몇 달간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뉴스에는 ‘위증’ ‘무고’ ‘사기’ 같은 거짓말 범죄 용어들이 범람하고 있다. “위증죄로 처벌받는 것보다 청와대가 더 무서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는 한 경제단체 고위임원의 고백은 ‘권력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팽배한 작금의 세태를 반영하는 듯하다.
‘거짓말 범죄’ 갈수록 증가
“법무장관 시절에 조사해보니 3대 거짓말 범죄(위증·무고·사기)가 검찰 업무의 70%를 차지하고 있더라. 거짓말 때문에 다른 업무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처사인가.” 법무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김승규 장로는 개탄을 금치 못했다.
법조계 경력만 35년인 김 장로는 10일 “당시(2003년) 일본과 우리나라의 거짓말 범죄 건수를 비교해봤더니 우리나라가 위증은 16배, 무고는 9배, 사기는 26배나 더 많았다”면서 “일본 인구가 한국보다 3배 가까이 되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인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일반인이나 크리스천이나 마찬가지”라고 안타까워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1심 법원에 접수된 위증죄 사건은 2012년 1181건에서 지난해 1365건으로 15.6% 늘었다. 같은 기간 무고죄는 1351건에서 1512건으로 11.9%나 증가했다. 서울북부지검에 따르면 지난해 관할 지역의 위증 관련 사범 적발 건수는 81명으로 2015년(24명)보다 무려 3배 이상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경남 창원에서는 위증 및 무고 사범의 적발 비율이 21.8%나 증가했다.
“마음속 경찰 사라진 시대”
거짓말 범죄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치열한 경쟁과 성과·물신주의 때문일 수도 있고, 정과 의리가 앞서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정서 탓일 수도 있다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창립한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의 진단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무신론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세상이 점점 세속화하면서 저마다 ‘마음속의 경찰’이 사라졌다. 또한 정직과 신용, 믿음, 신뢰 같은 고귀한 가치보다는 돈과 권력, 명예를 좇는 세속적인 가치를 더 따르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거짓말을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서기 정주채 목사는 “크리스천들의 경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하나님을 모든 곳에 존재하는 ‘만유(萬有)의 주’라고 저마다 고백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
거짓말에 대한 위험과 경고는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짓말의 말로(末路)가 얼마나 끔찍한지도 보여준다. ‘나봇의 포도원’(왕상 21) 사건이 대표적이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나봇이 주인인 포도원을 뺏기 위해 건달 2명을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위증하게 한 뒤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강탈했다.
이 일을 지켜본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합 왕의 비참한 죽음을 예언했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몸의 피도 핥을 것이다.” 예언은 3년 뒤에 아합 왕에게 그대로 이뤄졌다. 이 밖에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고(잠 12:22), 벌을 면치 못할 것(잠 19:5)이라고 성경은 경고한다.
손 교수는 “거짓말을 하면 당장은 이득을 볼지 모르지만 훗날에는 반드시 손해를 보게 돼 있다. 거짓말은 결국 자해행위”라며 “진실과 정직이 크리스천의 귀한 책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십계명 중 제9계명) 이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은 450년 전에 채택된 신앙고백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를 겨냥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문: 제9계명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답: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거짓 증언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말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성급하게 남을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법정이든 어디에서든 거짓말과 온갖 위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마귀가 사용하는 도구로써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불러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리를 말하며 공개적으로 진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 이웃의 명예를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홍수’ 시대, 기독인은 ‘마음 속 경찰’ 있는가
입력 2017-02-11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