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당국이 또 바이러스에 허를 찔렸다. 서로 다른 유형의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에 전국의 모든 소에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부족한 백신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부터 번번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당국은 서둘러 구제역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경기도 연천 젖소농가의 구제역 바이러스를 분석한 결과 ‘혈청형 A형’으로 확진됐다고 9일 밝혔다. 앞서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O형이었다. 유전형이 다른 두 바이러스는 전염성 등에서 차이는 없지만 다른 백신으로 예방해야 한다.
과거에 A형 소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2010년 1월 포천·연천의 사례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전부 O형이었다.
이에 따라 방역 당국은 그동안 O형 구제역을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해 왔다. 이번에도 백신접종 대상 소 283만 마리 가운데 193만 마리에 ‘O형 백신’을 접종하고, 나머지 90만 마리에 ‘O+A형 백신’을 접종할 예정이었다. O+A형 백신은 O형과 A형 구제역에 대한 항체를 모두 만들 수 있는 백신이다. O+A형 백신은 현재 190만개 정도의 재고가 비축돼 있다. 전체 소에게 접종하기엔 물량이 부족하다.
일단 정부는 보유하고 있는 O+A형 백신을 이번에 A형 구제역이 발생한 연천 인근의 경기 북부와 강원도 위주로 접종키로 했다. 나머지 소에 접종하는 데 필요한 O+A형 백신은 긴급 수입한다.
하지만 백신 수입을 위해선 최소 1주일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입 이후 항체 형성 기간까지 감안할 때 상당수 소가 보름 정도는 A형 구제역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국내에 보유하고 있는 O+A형 백신이 이번 A형 구제역에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바이러스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선 A형 백신을 추가로 전량 수입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다.
당국은 전국적으로 구제역 바이러스가 퍼져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 간 역학관계가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바이러스가 상당히 깔려 있을 거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구제역이 더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장 이날 충북 보은서 또 구제역 양성반응이 나왔다. 기존 구제역이 발생한 보은 젖소농장과 1.3㎞ 떨어진 한우농가다. 공기를 통해 전파됐거나 사람·차량에 의해 전염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전반적으로 바이러스 항체 형성률이 저조하게 집계되는 만큼 추가로 구제역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구제역 경보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면서 전국의 우제류 가축시장이 일시 폐쇄되고, 살아있는 가축의 농장 간 이동도 금지된다. 구제역으로 위기경보가 심각으로 오른 것은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2010년 이후 7년 만이다.세종=유성열 기자nukuva@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구제역 A·O형 동시발생… 위기경보 최고단계 ‘심각’ 격상
입력 2017-02-09 18:10 수정 2017-02-09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