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을 시행하는 좋은 사업에 왜 경제수석이 증거를 인멸하고 위증을 지시한 건가요?”(강일원 헌법재판관)
“확인을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검찰 수사기록을 다 읽어보고 증인신문사항을 만드느라 바빠서….”(박근혜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
박 대통령 탄핵심판의 제12차 변론기일이 진행된 9일 오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증인신문이 끝나자 주심 강일원 재판관이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그는 박 대통령이 직접 표명한 탄핵소추사유에 대한 반박 의견을 확인했음을 알린 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을 향해 “이곳에서 직접 답변하실 수 있을 것”이라며 의문점들을 쏟아냈다. 앞서 박 대통령은 A4용지 13페이지 분량의 ‘소추사유에 대한 피청구인의 입장’이란 의견서를 대리인단을 통해 헌재에 냈다. 탄핵소추사유의 의혹들이 본인과 관계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헌재는 국정문건 유출을 시작으로 제기된 의혹마다 박 대통령의 답변에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앞서 박 대통령이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위임한 일이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돌렸는데, 강 재판관은 “이렇게 중요 기밀들이 마구 오가는데 민정수석실에서 바로 체크되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오래도록 문건 유출이 허용된 이유에 대해 근원적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련 자료를 정 전 비서관 등에게 받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보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헌재는 의문이 많았다. 강 재판관은 “그 자료가 지금까지의 증거에 따르면 최서원(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씨가 만든 자료로 이해가 된다”며 박 대통령이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수사가 펼쳐지자 휴대전화 파기 등 지시가 이뤄진 점 역시 여전히 헌재엔 의문이었다.
박 대통령이 “최씨와의 연관을 몰랐다”고 선을 그은 KD코퍼레이션, 플레이그라운드, 더블루케이 등의 최씨 관련 법인에 대해서도 강 재판관은 질문을 계속했다. 박 대통령은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괜찮은 회사’ ‘기술력이 뛰어난 업체’라는 식의 보고를 받았다는 답변을 한 셈인데, 과연 청와대 부속실의 비서관이 그러한 중소기업을 소개하는 일까지 하느냐는 것이었다. 강 재판관은 “더블루케이의 경우 대표이사와 고영태씨, 여직원만 있는 회사인데, 이런 곳이 대통령께 ‘실력 있는 업체’라 보고되는 것은 허위보고 아니냐”고도 되물었다.
박한철 전 소장이 제시한 ‘데드라인’인 3월 13일 이전에 선고가 이뤄지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직 가능하다. 헌재는 탄핵심판의 변론 절차가 이달 중 대부분 마무리될 것임을 이날 시사했다. 헌재는 “그동안 탄핵심판에서 주장해온 모든 내용을 오는 23일까지 정리해서 준비서면으로 제출하라”고 소추위원과 박 대통령 측에 주문했다. 이에 대해 소추위원 측은 “23일 즈음해 변론이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는 평을 내놨다.
소추위원 측은 지난 8일 “박 대통령이 14일까지는 출석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게 해 달라”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다. 탄핵심판에 줄곧 불출석해온 박 대통령이 최후진술 필요성을 내세워 심리 막판 일정을 조율, 시간을 지연시킬 가능성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2일까지 예정된 13명의 증인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따로 변론기일을 잡지 않기로 했다. 헌재는 증인출석요구서를 결국 전달하지 못한 고영태씨에 대해서는 직권으로 증인채택을 취소했다.
탄핵심판이 종국을 향한다는 분위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헌재는 이날 중복되는 질문, 소추사유와 관계없는 질문, 사실관계가 아닌 의견을 구하는 질문에 대해 유난히 강하게 질타했다. 그간 웬만하면 자율적인 증인신문을 보장하던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신문사항과 실제 신문을 비교해 가며 “다음 항은 생략하라”는 식으로 속도감 있는 진행을 보여줬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은 180일로 규정돼 있지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은 아닌 훈시규정이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국정공백과 사회적 손실을 우려해 빨리 처리해야 마땅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도 63일만이 소요됐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대통령 측이 빠른 진행을 촉구했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朴측 시간끌기’ 적극 차단… 재판부, 빠른 심리 박차
입력 2017-02-10 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