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은의 씨네-레마] 언어, 소통과 화합의 무기

입력 2017-02-11 00:01

어느 날 돌기둥 모양의 거대한 셀 12개가 지구 전역에 출현한다. 비상사태에 돌입한 미국 러시아 중국 등 12개국은 미지의 생명체가 온 목적을 알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을 불러 외계인과 소통을 시도한다. 18시간마다 열리는 신비한 돌기둥 안에 들어간 루이스는 몇 번의 시도 끝에 ‘무기를 주러 왔다’는 대답을 듣는다. 그들이 말하는 ‘무기’는 어떤 의미일까.

‘컨택트’는 유명한 SF 소설작가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소설은 외계 언어를 배우면서 루이스에게 일어난 개인적 삶의 변화를 중심으로 기술돼 있다. 하지만 원작과 달리 영화는 전쟁과 무기의 의미, 각 나라 간의 갈등 상황을 전면에 드러낸다. 감독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는 전작 ‘그을린 사랑’ ‘시카리오’ 등의 작품을 통해 현대 전쟁과 테러, 참혹한 상황에 노출된 인간의 극한 감정, 회복 불가능할 것 같은 트라우마에 대한 색다른 연출로 인정을 받았다. 빌뇌브 감독의 이런 세계관은 언어와 과학 이론을 기반으로 인류에 대한 비전이 담긴 묵시론적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인간의 사고가 언어에 의해 규정된다’는 언어학설에 기반한다. 7개의 다리를 가져 헵타포드(heptapod)라 불리는 외계인은 앞뒤 구분이 없는 그 생김처럼 언어에 과거-현재-미래의 순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헵타포드어를 습득하면서 루이스에겐 미래를 보는 능력이 생긴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상태로 미래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인과율(因果律)적이고 선형적인 인간의 언어체계와 달리 헵타포드어는 목적론적이고 비선형적인 언어체계다. 원형으로 표현되는 그 언어는 루이스의 딸 이름 한나(HANNAH)처럼 처음과 끝이 같고, 시작과 동시에 결과를 포함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소설에서 루이스는 미래에 살고 있는 딸의 생애를 보는 데 그치지만 영화에서 외계인이 준 언어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계시적 언어다. 루이스는 미래를 보며 인류에게 그 언어를 가르치게 될 예언자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예언자가 그러하듯 그녀가 가진 신비의 능력은 고통의 비전이기도 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얻는 동시에 잃을 것이라는 상실의 비전이다. 시작과 끝을 알게 되지만 그녀의 선택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별의 고통은 만남의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외계인이 말한 ‘무기’의 해석을 둘러싸고 각국의 입장이 엇갈리고 전쟁을 준비하는 나라들이 속출한다. 그들은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는 적인가, 아니면 평화의 메신저인가. 3000년 후 인간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외계인이 건네준 무기는 다름 아닌 소통과 화합의 무기, 새로운 언어였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원제 어라이벌(arrival)은 더 다의적이다. ‘도착한 것’이며 ‘도래할 것’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의 묵시론적 색채를 더욱 드러내는 제목이다. 도착한 것은 무엇인가. 도래할 것에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우리의 무기는 무엇인가.

기독교는 그 무기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한다. 우리의 무기는 마치 꽃으로 준비하는 전쟁과 같다. “진리의 허리띠를 차고 평안의 복음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4∼17)

임세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