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기세가 심상치 않다. 9일 오전 충북 보은군 한우농가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돼 간이검사를 한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왔다. 정밀검사에서 확진되면 올해 들어 네 번째 구제역이 확인되는 셈이다. 특히 세 번째 구제역 발생지인 경기도 연천군 젖소농가의 구제역 바이러스 혈청형은 앞선 두 곳의 O형과 달리 A형인 것으로 드러나 방역 당국을 긴장케 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다른 유형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생긴 것은 처음이다. 국내에서는 2000년 이후 여덟 차례 구제역이 발생했으나 A형은 2010년 1월 당시 한 차례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O형이었다.
공기 전파력이 강한 구제역을 100% 차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제역 위기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되는 등 사태가 극도로 악화된 데는 당국의 미숙한 대처에도 원인이 있다.
2010년부터 구제역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정부는 지난해 전국의 백신 항체 형성률을 소 97.5%, 돼지 75.7%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구제역이 발생한 보은과 전북 정읍 농가의 항체 형성률은 각각 19%와 5%에 불과했다. 농식품부가 “항체 형성률이 낮다는 것은 접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자인할 만큼 엉망이었다. 백신 접종을 농가에 완전히 일임한 것도 문제였다. 농가가 백신 비용 부담을 느끼는 데다 소가 유산을 하거나 착유량이 줄어든다는 등 백신을 기피하는 사례가 많았음에도 당국은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구제역 백신 불신을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발생 가능성이 낮다 하더라도 A형 구제역 백신을 전혀 확보하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국내에는 현재 O형 또는 O+A형 백신밖에 없어 A형 구제역에 대해서는 백신이 마련될 때까지 무방비 상태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은 연례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구제역도 농식품부가 아니라 총리실이 주도해 범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했어야 했다.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거나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탄핵 정국 등 정치지형이 변하면서 그런 의혹은 더욱 짙다. 가축전염병 창궐은 국가 비상사태와 맞먹는 사안이다. 정부는 모든 역량을 쏟아 더 이상 피해가 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겠다.
[사설] 나사 풀린 공무원들이 구제역 진정시킬 수 있을까
입력 2017-02-09 17:50 수정 2017-02-09 2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