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7급 공무원의 희망 1순위 부처다. 비고시 출신이 중앙부처에서 주력으로 자리잡기 힘든 것과 달리 공정위에선 독립된 조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역량을 펼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조사관이 자신이 맡은 사건에 결론을 내리면 담당 국·과장도 이에 이의를 쉽게 제기할 수 없는 게 공정위 분위기다. 검사동일체 원칙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검찰과 같지 않으면서도 ‘경제검찰’의 위상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전통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의 ‘일탈’은 뼈아프다. 박영수 특검은 전날 김 전 부위원장 집을 압수수색하고 소환해 밤샘조사를 벌였다. 특검 관계자는 9일 “김 전 부위원장은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 전 부위원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으로 인한 신규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제정 당시 실무진의 의견을 무시하고 청와대 지시를 받아 삼성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 실무진은 합병으로 인한 순환출자 구조 강화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이 처분할 삼성물산 주식 규모를 1000만주로 결론 내렸는데, 김 전 부위원장이 이를 500만주로 대폭 줄였다는 것이다. 특히 정재찬 공정위원장 결재까지 맡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이를 뒤집은 정황도 포착됐다.
김 전 부위원장은 특검 조사에서 행정기관의 상급자로서 정당한 업무 지시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정위는 행정기관이기 이전에 1심 재판 기능을 가진 준사법기관이다. 자신들이 불리할 땐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청와대 우산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다가 권한을 행사할 때는 준사법기관의 독립성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 위원장은 김 전 부위원장 조사와 관련해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함구령보다는 뼈아픈 반성이 우선이다.
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
[현장기자-이성규] 삼성에 특혜의혹… 불신 자초한 경제검찰
입력 2017-02-09 18:38 수정 2017-02-09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