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큰외삼촌, 큰이모, 작은이모부, 큰이모부. 윗세대 어른들이 차례로 떠나가신다. 외사촌들도 거의 환갑을 향해 달리는 나이들이다. 부음이나 들려야 띄엄띄엄 모이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뚜렷해지고 이마도 훤해진 큰이모네 막내 동생이 아버지 영정사진 앞에서 내게 묻는다. 누나, 이모 아직도 만두 빚으셔? 순간 울컥하면서 콧등이 시큰해진다.
70년대 후반 삼선교. 옛날 성곽 밑 우리 집에는 가끔 외사촌들이 모였다. 우리 엄마의 특별 메뉴 ‘삼선교 이모표 만두’를 먹기 위해서였다. 엄청난 양의 김치를 다져서 짜고, 두부를 으깨서 짜고, 숙주도 삶아 다져서 짜고…. 다지고 짜고를 반복한 끝에 만두소가 완성되면 만두피 만들 차례. 냉동 만두피 같은 건 상상도 안 하던 때였으니 밀가루 반죽하고, 떼어서 동글동글 빚고, 납작 누른 뒤 밀가루 묻혀 밀고…. 밀대가 넉넉할 리 없으니 소주병 맥주병도 총동원, 대학생 오빠, 고등학생 동생도 총동원. 그렇게 시끌벅적 만두를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여남은 명 사촌들로 발 딛을 틈 없는 거실로 삶은 만두는 연성 날라졌고, 연성 입 속으로 사라졌다. 특히 고등학생 대학생 사내 녀석들의 끝없는 먹성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먹이고도 만두는 남아서 냉동 칸에서 한겨울을 나곤 했었다.
이제 삼선교 집은 성곽 복원과 공원 조성 사업으로 사라졌다. 사촌들도 지방으로 외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엄마는 어쩌다 잡채 조금만 만들어도 기진맥진이고, 나는 엄마의 요리 솜씨를 손톱만큼도 물려받지 못했다(나는 부엌일에는 젬병이라 전복죽 하나만 끓여도 전국적 뉴스가 된다). 그런데도 까마득한 옛 추억이 동생의 ‘만두’ 한 마디에 해저 화산처럼 우르릉 솟아올라 마음을 헤집어놓는다. 이제라도 엄마의 만두 비법을 전수받을까? 한 녀석이라도 불러다 해 먹일까? 예순 다 되도록 한 번도 안 해봤던 이런 생각을 해 놓고 내가 깜짝 놀란다. 이걸 실행에 옮기면 모두 뒤집어지겠지? 상상하니 즐겁다. 그래 도전해본다. 얘들아, 기다려라.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만두의 추억
입력 2017-02-09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