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근무하던 남편이 홍콩으로 발령을 받은 것은 1985년 4월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때부터 두 번이나 홍콩에 가면서 만 8년을 살았다. 홍콩에 거주한 지 1년 쯤 지나 한인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는데 그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마치 확성기를 귀에 대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고 그때부터 회개하기 시작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현실로 다가왔다. 집회가 끝난 뒤에도 통회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이어갔다. 성령은 예수님의 피로 나의 죄를 철저히 씻어 내길 원하셨다.
그 뒤로 나의 생각과 관점이 달라졌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 솟아올랐다.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이 타올랐다. 억지로가 아니었다. 그저 주님을 아는 기쁨과 자유를 전하고 싶었다.
처음엔 전도 방법을 몰라 무작정 중국어 전도지를 나눠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홍콩 중심가 스퀘어파크를 지나던 중에 여성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만 보니 그들은 가사 도우미를 하기 위해 홍콩으로 온 필리핀 이주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다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복음을 소개했다. 몇몇은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곤 했다. 나는 굴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찾아갔다. 그러면서 알게 된 여성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생일이면 집에 초대해 식사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녀들이 털어놓은 홍콩에서의 삶은 미움과 불평으로 가득했다. 나는 자신을 괴롭히는 주인을 미워하기보다는 미워하는 마음 자체를 없애달라고 기도하자고 권했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며 사랑을 나누는 동안 그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밝아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다.
“미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더니 주인이 친절해졌어요.” “성경을 읽으며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었어요. 노트 좀 보세요.” 나는 스퀘어파크에서 소외된 자를 부르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해외선교를 계속할 수 있도록 남편을 다시 외국으로 발령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내가 외국에서 복음을 계속 전할 방법은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나가는 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홍콩을 마음에 두고 기도했다. 홍콩은 처음 선교를 시작한 곳이지만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남편이 일하던 BOA의 아시아지역본부에서 홍콩 일을 제안했다. 얼마 후 은행 구조조정이 단행되면서 남편은 사직서를 냈으나 홍콩지점이 남편을 현지 채용하면서 홍콩에 다시 돌아오게 됐다.
홍콩에서는 한인들과 함께 집에서 성경공부를 했다. 홍콩 정부병원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병원 전도를 위해 금식기도와 산 기도를 반복했다. 한국도 아니고 외국 병원에서 복음을 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허가를 얻기까지 몇 주를 기다렸고 기적적으로 통과됐다. 성악도 신학도 모르는 가정주부 5명은 그렇게 찬양을 부르며 복음을 전했다. 우리는 찬양과 율동을 할 때마다 말씀을 붙들었다. 막레이호스병원과 퀸메리병원의 문은 이렇게 열렸다. 나중에 홍콩을 떠날 때 헤아려 보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받은 사람만 1000명이 넘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상숙 <2> 전도 위해 두드린 홍콩 정부병원… 복음의 문 열려
입력 2017-02-1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