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금융투자업계 “은행 배불리기” 은행권 “환영… 규제는 NO” 신탁업법 제정 ‘충돌’
입력 2017-02-10 05:03
금융 당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신탁업법’이 갈등을 빚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은행권이 당국을 등에 업고 이익을 뺏으려 든다고 의심한다. 반면 은행권에선 규제를 풀다가 마는 ‘반쪽짜리 법’에 그칠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해 안에 자본시장법에서 신탁업법을 따로 분리해 신탁업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신탁업법 제정은 금융위원회의 올해 주요 정책목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금융위는 지난달에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 5대 추진 과제의 첫 순위로 신탁업법 제정을 꼽았다.
정부의 움직임에 금융투자업계는 격렬하게 반발한다. 그 이면에는 다른 업권에서 자산운용업계 ‘밥그릇’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이 깔려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6일 신년 간담회에서 “신탁업법을 따로 빼낸다는 취지 뒤에는 은행권이 신탁업을 통해 자산운용업에 진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탁업법 분리가 은행권 수익기반 확대의 다른 이름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은행권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신탁은 모든 금융업권이 공유하고 있는 비즈니스”라며 “(신탁업법 제정은) 금융권 전체에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왜 금융투자업계와 은행권은 신탁업법을 놓고 충돌하는 것일까. 갈등의 뿌리는 ‘펀드 시장’에 있다. 현재 자본시장법에 따라 은행은 자산운용 회사에서 판매하는 펀드 상품처럼 주식 포트폴리오를 직접 만들어 판매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자산운용 회사의 상품을 가져다가 팔아주는 창구 역할을 하는데 그친다. 하지만 신탁업이 전면 허용되면 ‘집합운용’과 ‘불특정 금전신탁’도 가능해져 주식 포트폴리오 구성이 가능해진다. 증권사의 펀드 상품과 사실상 별 차이가 없어지는 셈이다. 은행권에는 새로운 수익원이 생기게 된다. 이에 비해 금융투자업계는 큰 손해를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융위는 일단 선을 그었다. 금융위는 8일 합동 태스크포스(TF) 운영 방침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된 ‘집합운용’ ‘불특정 금전신탁’이 신탁업법 제정 방향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금융투자업계로선 일단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됐다.
이를 두고 은행권은 내심 불만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재산이나 권리에 대한 신탁도 은행이 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향 자체는 환영한다”면서도 “규제를 풀려면 다 풀어야지 어중간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국의 결정은) 금융투자업계가 운영하는 펀드가 죽을까봐 보호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융투자업계 역시 뒷맛이 찜찜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장 업계가 손해를 볼 우려는 줄었다”면서도 “전문 신탁법인을 육성하려면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가능한데도 굳이 신탁업법을 분리하려는 의도가 뻔하다”고 했다. 따로 법을 제정한 것부터가 장기적으로 관련 규제를 모두 풀어주려는 수순 아니냐는 의심이다.
금융 당국은 금융투자업계와 은행권 사이의 잡음이 부담스럽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정부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건 ‘유언신탁’ 등 종합재산신탁을 육성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한 의미의 신탁업을 위해 일부러 정책 방향에서도 선을 그은 것”이라며 “법 제정 취지 자체가 다른데 어느 한편의 이익을 챙겨준다는 시각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