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는 제목이 눈길을 당겼다. 은퇴 후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세계 처음으로 홀로 도보 여행했다는 프랑스 기자 출신의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그 책이다. 재출간된 건가? 다시 보니 제목이 좀 달랐다. ‘나는 걷는다 끝.’ 제목에 단어 하나가 더 붙은 것이었다.
어느새 십여년이 흘러 75세의 노인이 된 올리비에. 그는 새로운 도보여행에 나섰고, 이로써 세 권짜리 ‘나는 걷는다’ 여행기에 완결판이 보태졌다.
이 책은 몇 가지 지점에서 전작과 차이가 나며 이로 인해 색다른 감동과 지적 재미를 준다. 일흔 중반에 도보 여행을 했다는 점, 이번엔 혼자가 아닌 둘의 여행이라는 점, 그리고 실크로드의 개념을 프랑스 리옹까지로 확장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등산화를 넣어두고 슬리퍼를 꺼내야 할 시간, 이제는 소파에 푹 파묻혀야 한다”라고 머뭇거리던 그였다. 그런 그가 “왜 안 떠나는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될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댄단 말인가”라며 다시 짐을 꾸렸다. 노화가 주는 여러 질병이 시달렸지만 깊숙이 잠복해 있던 도보 여행의 욕망에 불을 당긴 것은 6년 동안 동거했던 연인 베네딕트 플라테다. 책에 따르면 두 사람은 시민연대계약(이성 혹은 동성 간의 시민결합으로 결혼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상호간에 진다)을 맺은 파트너 관계다. 그녀가 어느 날 말했다. “산티아고 여행은 프랑스에서 출발했으면서 실크로드는 왜 프랑스에서 출발하지 않았나요?” 그러고 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 더욱이 프랑스 리옹은 과거 견직물 공업 중심지지 않았던가. 이번 신 실크로드 도보 여행은 리옹에서 출발해서 이탈리아, 발칸반도, 그리스를 거쳐 터키 이스탄불에서 끝나는 걸로 완성된다. 3000㎞의 긴 여정이다. 2103년과 2014년 두 차례에 나눠 진행된 이번 도보 여행은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플라테와 함께했다.
이번 여행기도 풍광에 대한 감탄, 여행이 주는 힐링, 이방인과의 교감 등 여행 에세이가 갖는 전형성을 벗어난다. ‘이탈리아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는 식의 인문학적 시선이 깔려 있다. 또 ‘서유럽은 전쟁과 종교간 폭력, 빈곤을 겪은 이 발칸 사람들에게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깊이가 장점이다. 새 여행 파트너 플라테의 경쾌하고도 쫀득한 글도 추가돼 묘미를 준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이번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일흔 다섯 여행가 다시 길 위에
입력 2017-02-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