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책에 담긴 단락을 그대로 인용해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나 제도를 과연 누가 탄생시켰는지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를 해본다면? 거의 대부분, 여가와 유희가 그 잉태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시시콜콜한 놀이 문화와 유행을 좇고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는 게 이 책의 골격이다. 여기에 보태지는 살점은 수많은 사례들. 놀이와 유행이 혁신을 이끌어 세상을 바꿔놓은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패션과 쇼핑이 가진 역사적 파워를 전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산업혁명의 도화선을 17세기 후반 영국 런던에 등장한 상점들에서 찾는다. 이들 상점의 정면은 큰 유리로 돼 있었다. 매장 안은 정교하게 장식된 거울과 조명 덕분에 ‘귀족 저택의 접견실’ 같았다.
이전까지 별다른 인테리어가 없던 상점들이 경이로운 세상, 즉 ‘원더랜드(Wonderland)’로 거듭난 것이다. 주인들은 상점 분위기에 걸맞은 면섬유 옥양목을 선보였고, 손님들은 옥양목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가격이 비싸고 내구성이 약해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한 면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면이 대대적인 인기를 끌자 발명가들은 면을 대량생산할 기계를 만드는 데 매진했다. 방직기가 만들어지고 이런 현상은 증기기관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요약컨대 즐거움을 좇는 인간 심리가 반영된 상점의 등장이 새로운 소비문화를 낳고 산업혁명까지 이끌어냈다는 내용이다.
이런 얼개는 산업혁명의 통념을 뒤집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산업화가 새로운 소비문화를 낳았다는 게 아니라 소비문화가 산업의 발전을 유도했다는 의미니까.
놀이 문화가 바꾼 세상의 풍경을 전하면서 예시로 드는 것 중 하나는 책에서 ‘커피 하우스’로 명명하고 있는 카페다. 17세기, 남성들의 놀이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우후죽순 생겨난 카페는 주식 투자가의 집합소이자 정치계 뒷공론의 온상이었다. 당시 막 생겨나던 언론인에게는 카페가 곧 사무실이자 출입처 역할을 했다. 카페에 모인 이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를 격의 없이 대했다. 이 같은 카페의 민주주의적 분위기는 세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책장을 덮을 때쯤 되새기게 되는 건 서문에 적힌 이런 문장이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오락거리로 폄하되는 장난과 유희가 결국 미래를 예견하는 발명품이었다.’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국내 수많은 명망가들이 추천사를 썼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책과 길-원더랜드] 유희 본능, 역사를 바꾸다
입력 2017-02-10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