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생들에게 글쓰기 윤리를 가르치는 ‘글쓰기의 기초’(구 대학국어) 주임교수를 겸하고 있는 국어국문학과 박모 교수(현대문학 전공)가 잇단 논문 표절 문제로 물의를 빚고 있다. 하지만 ‘3년 징계 시효법’(교육공무원법)의 보호를 받아 부정행위가 밝혀져도 처벌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3년 전 게재된 논문은 문제가 드러나도 징계할 수 없다는 이 법이 연구윤리 훼손을 방조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8일 서울대와 한국연구재단, 국제비교한국학회 등에 따르면 서울대 총장 직속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국문과가 지난해 말 박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를 정식 의뢰해옴에 따라 검증에 착수했다. 이현희 학과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본부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좀 있으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논문은 한국비교학회 학회지 ‘비교문학’(등재지)에 2007년 실린 ‘근대 이후 서구 수사학 수용에 관한 고찰’인 것으로 전해졌다. 논문에서는 1991년 한국문화연구원논총에 실린 이화여대 김상태 교수의 ‘개화기의 문체’ 일부가 인용표시 없이 사용됐다.
앞서 지난해 4월 국제비교한국학회 학술지 ‘비교한국학’은 박 교수가 2005년 투고한 ‘한국 근대문학과 번역의 문제: 해외문학파의 번역론을 중심으로’에 대해 논문 취소 결정을 공고한 바 있다. 논문이 2004년 ‘불어불문학 연구’ 60집에 발표된 J씨의 논문 ‘한국 근대시와 프랑스 상징주의 시 사이의 상호교류’ 일부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10여년이 지나 저자의 요청에 따라 논문이 취소된 특이한 사례다. 박 교수는 메이저 문학지 편집위원을 16년이나 지내는 등 평단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당시 J씨는 박 교수가 재직 중인 서울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지낸 바 있다. 현재는 대학교수가 돼 문학비평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국제비교한국학회는 그러나 논문 취소 사실을 한국연구재단에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진에게 박 교수의 논문 취소 사실이 공개된 것은 한 학기가 지난 9월 학생들의 제보에 의해서다. 박 교수는 “지난해 초 우연히 11년 전 쓴 논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는 연구윤리 규정이 없던 시절이다. 문제를 인지하고 나서는 학회에 자진 철회 절차를 밟았고, 학교에도 학과장과 교무처장에게 신학기가 시작된 9, 10월 연이어 알렸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연구자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후에는) 절차대로 다 했다. 어떤 처분이 있으면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일부 학생과 교수들의 강력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징계 문제는 유야무야됐다.
대학본부 및 과 수뇌부에서 시효가 지난 사안이라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응한 정황이 짙다. 그러다 최근 2차로 표절 논란이 제기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 논문이 부교수 승진 시 평가 자료로 사용된 것이 확인되면서 온건파 교수들까지 격앙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는 제3, 제4의 논문 표절 의혹에 시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두 번째 의혹이 제기된 논문조차 시효 탓에 징계 대상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표절 피해 연구자의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데 표절자의 죄는 소멸되는 게 온당한 처사냐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국문과를 비롯한 인문대학 내에도 소문이 퍼지면서 연구 풍토가 흔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교수와 학생들은 “표절 의혹이 빈번한 교수라면 논문 지도를 할 자격이 없다. 지도받는 학생들은 논문을 표절당한 사람에 이어 제2의 피해자가 되는 셈”라고 말했다. 서울교육대학교 이인재 교수(실천윤리)는 “표절 검증시효는 없는데, 징계시효는 있는 건 엇박자”라면서 “솜방망이 처벌 탓에 부정행위로 인한 이익이 더 크다는 인식이 퍼져 표절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에서는 2013년 당시 정치외교학부 김용찬 교수가 2004년 쓴 논문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자 사직한 바 있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단독] 표절 면죄부… ‘3년 징계시효’ 논란
입력 2017-02-08 17:40 수정 2017-02-12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