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안일한 땜질식 대책과 탁상행정이 ‘소 구제역 사태’를 부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구제역 발병·확산을 막기 위한 제도와 인력이 상대적으로 발병이 잦은 돼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충북·전북에 이어 경기도까지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7월 ‘구제역 예방접종 및 확인서 휴대에 관한 고시’를 개정하면서 제7조에 ‘구제역 임상검사 및 임상검사확인서 발급·휴대’ 항목을 신설했다. 가축을 이동시키려면 구제역 임상검사를 하고, 확인서를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임상검사 대상을 돼지로 한정했다. 소는 예방접종확인서만 작성해 휴대하면 된다. 돼지를 중심으로 구제역 피해가 심각하자 급하게 내놓은 땜질 처방이다.
또 돼지는 전체 농가를 대상으로 1년에 1회 백신을 접종한 뒤 구제역 항체가 형성됐는지 검사를 실시해 왔다. 검사 물량은 농가당 16마리다. 소는 전체 농가의 10%를 선정한 뒤 농가당 1마리만 조사했다.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8일 브리핑에서 “기존 소 항체 형성률 조사 방식은 소 개체가 아닌 농가의 항체 형성률을 조사한 것”이라며 “소 개체 전반의 항체 형성률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했다.
그나마 표본 소 선정 방식은 엉터리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무작위 표본 추출이 아닌 농장주가 백신 접종을 제대로 한 소를 찍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본부장은 “농장주가 과태료를 피하기 위해 검역관에게 백신 접종을 잘한 소의 채혈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검역본부는 뒤늦게 농장별로 소 검사 마릿수를 기존 1마리에서 6마리로 늘리고 연간 1회만 실시하는 조사를 최대 4회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도 연천 젖소농장에서 구제역 양성 반응이 확인되는 등 구제역은 이미 확산 추세다. 충북→전북→경기도로 이어진 구제역 발생에 당국은 ‘패닉’에 빠진 분위기다. 인접해 있지 않은 세 지역의 역학적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보은과 정읍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일치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유입·전파 경로는 여전히 물음표다.
전국의 모든 소에 대한 구제역 백신 접종이 이날부터 시작됐지만 항체가 형성되는 1주일 내 구제역이 추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검역본부가 구제역이 발생한 보은과 정읍 농장 3㎞ 이내에 위치한 농장을 일제 조사한 결과 절반의 농가에서 항체 형성률이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제안하는 80%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돼지 위주 땜질식 대책 소 구제역 사태 불렀다
입력 2017-02-08 17:41 수정 2017-02-08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