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1㎜ 예쁜꼬마선충에게 듣는 인간의 비밀

입력 2017-02-10 00:01
신간 ‘벌레의 마음’의 주인공인 예쁜꼬마선충의 모습. 사람의 유전자와 유사성이 높아 인간 신경계 연구에 이상적인 표본이 되고 있다. 이 생명체는 암수 성질을 모두 지닌 자웅동체와 수컷, 두 개의 성(性)으로 나뉜다. 사진에서 크기가 큰 선충이 암수가 한 몸인 자웅동체이며 작은 것이 수컷이다. 바다출판사 제공
마음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까. 영혼의 세계를 가늠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마음에서 출렁이는 감정의 격랑을 뚫고 당신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텐데, 그런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얼마간 객쩍고 조금은 생뚱맞은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런 질문을 부여잡고 씨름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경계는 영혼의 육체이고, 뇌는 마음의 몸’이라는 일념으로 주야장천 생명의 세계를 탐사하는 과학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들이 쓰는 과학 용어는 일반인에게 외계어 수준이다. 과학자들이 연구실에서 주고받는 고민의 언어는 너무 어려워 세상의 문턱을 쉽게 넘나들지 못한다.

‘벌레의 마음’은 서울대 ‘유전과 발생’ 연구실에서 활동하는 연구자 다섯 명이 공동 집필한 책이다. 웹사이트 ‘사이언스온’의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에 연재한 글을 한 권에 묶었다. 서문에는 과학자와 일반인 사이에서 통역사 노릇을 하겠다는 이들의 다짐이 담겨 있다. ‘비전문가보다는 연구자가 해당 연구 분야에 대해 더 잘 통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어설픈 통역이라도 진심이 담긴 이 낭독이 누군가에겐 들을 만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이 풀어내는 과학 스토리의 주인공은 1㎜ 남짓한 벌레 ‘예쁜꼬마선충’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생명체지만 과학계에서는 입지를 굳힌 스타라고 한다. 생물학에서는 과학자들이 연구 결과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게 소수의 종을 ‘모델 생명체’로 삼는데, 예쁜꼬마선충이 대표적이다.

이야기는 예쁜꼬마선충의 프로필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서식지가 어디이고 무엇을 먹고 사는지 살펴본 뒤 왜 이 생명체가 실험에 유용한지 설명한다. 몸이 투명해 현미경으로 관찰하기에 용이하고, 인간의 유전체와 40% 이상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생물학자 자크 모노(1910∼1976)는 “대장균에서 진실인 것은 코끼리에서도 진실이다”는 말로 생물학의 보편성을 설명했는데, 이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예쁜꼬마선충에게 진실인 것은 인간에게도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세계의 과학자들이 예쁜꼬마선충을 활용해 거둔 업적들을 전한다. 예컨대 예쁜꼬마선충은 신경세포체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다른 신경세포나 근육에 전달하는 ‘축삭’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저자들은 축삭을 ‘마음을 이어주는 전선’으로 표현했는데, 과학자들은 그동안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 이 전선이 어떻게 목적지를 찾아가 몸과 마음을 이어주는지 얼마간 밝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예쁜꼬마선충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책 속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지점은 인간의 생애다. 저자들은 예쁜꼬마선충을 매개로 흥미진진한 질문들을 던진다. ‘사랑의 마법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간이 잘 맞는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왜 늙는 걸까’….

예쁜꼬마선충은 고작 302개의 신경세포를 가졌다. 영국 생물학자 시드니 브레너(90)는 1986년 예쁜꼬마선충의 신경 네트워크를 시각화한 340페이지 분량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이 책과 동명인 ‘벌레의 마음’. 브레너는 예쁜꼬마선충이 가진 마음의 지도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예쁜꼬마선충에 비하면 인간의 마음을 그려내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뇌에 담긴 신경세포만 약 1000억개나 되고 이들 세포가 빚어내는 신경 접속의 개수는 100조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목적지를 향한 과학자들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저자들도 그들 중 하나다. ‘벌레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어체의 문장으로 씌었다. 살뜰한 목소리로 생명학의 스토리를 들려주는 따뜻한 과학책을 기다렸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