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엔터스포츠] 우린 ‘도깨비’ 형제

입력 2017-02-10 05:10



성인 남자들 간의 포옹은 어색하다.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금기시 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성인 남자들 간의 포옹은 자연스럽다. 심지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함께 힘을 모야 싸워야 하는 스포츠에서 ‘브로맨스(bromance)’는 뜨거울 수밖에 없다.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합친 브로맨스는 2000년대 이후 남자 간의 진한 우정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잇따라 나오면서 생겨난 신조어다. 스포츠에서도 브로맨스는 눈길을 모으고 있다. 과거 박지성(36·은퇴)과 파트리스 에브라(36·유벤투스)가 대표적이다.

손흥민-김진수 “러시아월드컵 함께 가자”

요즘 가장 활발하게 브로맨스를 실천하는 선수로는 손흥민(25·토트넘 홋스퍼)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짝꿍을 만든다. 독인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 시절엔 톨가이 아슬란(27)과, 바이엘 레버쿠젠 시절엔 카림 벨라라비(27)와 깊은 우정을 나눴다. 토트넘에서 새로 찾은 짝궁은 ‘잉글랜드의 재능’으로 불리는 델레 알리(21)다.

국가 대표팀에서 손흥민의 단짝은 김진수다. 동갑내기인 둘은 스스럼없이 진한 허그를 나눠 한국 축구계의 대표 브로맨스 커플로 인정받았다. 이들은 17세 이하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인연을 맺었다. 성인 대표팀에도 나란히 발탁돼 2015년 1월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대표팀에 오면 둘은 룸메이트가 돼 붙어 다닌다.

손흥민과 달리 김진수는 아직 월드컵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2014년 홍명보 국가 대표팀 감독의 두터운 신뢰를 받으며 월드컵 출전을 꿈꿨지만 브라질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오른쪽 발목 부상을 당해 낙마했다. 김진수는 지난해 3월 24일 2018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레바논전 이후 대표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김진수는 이적시장을 통해 전북으로 이적했다. 손흥민과 함께 러시아월드컵에 나서는 것이 김진수의 꿈이다.

서재덕-전광인 “우리는 친구 같은 선후배”

남자 프로배구에선 서재덕(28)과 전광인(26·이상 한국전력)이 환상의 케미를 자랑한다. 둘은 성균관대 선후배로 인연을 맺었다. 성균관대 시절 ‘좌광인-우재덕’ 콤비는 2011년 전국대회 4관왕 주역으로 맹활약했다. 공교롭게도 키(194㎝)뿐 아니라 포지션도 레프트로 같다. 서재덕의 안정적인 리시브와 전광인의 날카로운 공격은 한국전력의 최고 무기다.

전광인은 2013년 8월 12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2013-2014 시즌 V-리그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한국전력에 지명된 뒤 “부모님이 아니라 재덕이 형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서재덕은 전광인에 대해 “친구 같은 동생”이라고 말했다.

둘은 지난 1월 2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나란히 출전해 끼를 발산시켰다. 전광인은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기록했고, 전광인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하준호-김선민 “동고동락하며 꿈 키웠죠”

프로야구 kt 위즈의 하준호(28)와 김선민(27)도 브로맨스 커플로 유명하다. 하준호가 2015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kt로 이적한 뒤 ‘동행’이 시작됐다. 두 선수는 2015시즌 kt 2군에서 처음 만났다. 주목받지 못하던 외로운 시기에 함께 동고동락하며 ‘1군 진입’이라는 미래를 꿈꿨다.

타지 생활도 친해진 계기가 됐다. 김선민은 대구, 하준호는 부산 출신이다. 두 선수는 수원 kt 위즈파크 근처에 방을 잡고,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냈다. 고단한 2군 생활에 여자친구도 없었던 두 ‘솔로남’은 근처 카페에서 ‘셀카’를 찍으며 휴일을 보내기도 했다.

운명이었을까. 둘은 2015시즌 비슷한 시기에 차례로 1군에 콜업돼 더욱 돈독해졌다. 김선민은 “준호 형과 어떻게 자리를 잡고 성장할지 함께 고민해왔다.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터놓고 조언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하준호는 “올해는 자신감을 끌어올려 같이 도약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허일영-이승현 “일곱 살 차이 극복했어요”

프로농구(KBL) 고양 오리온의 허일영(32)과 이승현(25)은 일곱 살 차이다. 이승현이 프로에 데뷔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서로를 그저 농구하는 선후배로만 알았다.

2014년 9월 KBL 신인 드래프트를 하루 앞둔 이승현은 떨리는 마음에 평소 알고 지내던 김선형(서울 SK)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이 김선형의 휴대전화를 잽싸게 가로챘다. 바로 김선형과 함께 2014 인천아시안게임 농구대표팀에 소집됐던 허일영이었다. 허일영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이승현에게 다짜고짜 “넌 우리 팀이다. 왠지 올 것 같다”고 장담했다. 이승현은 허일영의 예언대로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오리온 유니폼을 입었다.

이승현은 데뷔 후 허일영과의 첫 만남에서 “형 말대로 왔으니 앞으로 잘 챙겨주세요”라며 애교를 부렸다. 둘은 지난 시즌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일궈냈고, 비시즌엔 휴가도 함께 떠나는 ‘절친’이 됐다.

서로 분신 같은 ‘사제 일체’도 만만찮네!
페르소나(persona).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영화에서 페르소나는 종종 감독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를 지칭한다. 스포츠에서도 이와 같은 관계가 존재한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 최강희(58) 감독의 페르소나는 이동국(38)이다. 이동국은 2002 한·일월드컵에 이어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경기에서도 부진해 2008 시즌 성남에서 13경기 2골에 그쳤다. 그 즈음 최 감독 역시 팀 성적이 좋지 않아 경질론이 대두되고 있었다. 최 감독은 2009년 성남 FC에서 빛을 보지 못하던 이동국을 전북으로 영입하며 사제의 연을 맺었다. 이후 둘의 인생이 달라졌다.

이동국은 2009 시즌 22골을 터뜨리며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 감독도 팀 창단 15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둘은 전북의 K리그 4회 우승을 합작했다. 2015년 이동국은 K리그 사상 처음으로 MVP를 4회 수상했고, 최 감독도 K리그 최고 감독상 4회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해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도 함께 들어올렸다. 최 감독은 이동국에 대해 “선수와 지도자 관계가 아니라 가족 같은 관계다”며 “어느 순간부터 플레이를 주문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전북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지난해 스카우터의 심판 매수 사건으로 2017 ACL 진출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두바이 전지훈련을 떠났던 전북은 지난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최 감독과 이동국은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유재학(54) 감독과 양동근(36)의 관계도 비슷하다. 유 감독은 양동근과의 관계에 대해 ‘사제지간’보다는 ‘입단 동기’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써 왔다. 실제로 유 감독은 2004년 9월 모비스 사령탑에 올랐다. 양동근은 200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모비스에 입단했다. 두 사제의 동행은 올해로 13년째다. 그동안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만 5개씩 모았다. 2013∼2015년 KBL 사상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3연패 위업도 달성했다.

유 감독은 팀의 화합과 조직력을 가장 중요시하는 농구를 강조해 왔다.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성실하기로 소문난 양동근은 유 감독을 보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선수였다. 양동근은 유 감독을 만나 리딩과 어시스트 능력을 키워 KBL 최고의 야전사령관으로 거듭났다.

스승은 제자에게 믿음을 주고, 제자는 스승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관계. 참 아름답다.

글=김태현 박구인 기자,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