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지게 돼있습니다. 인간은 시간 가운데 갇혀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초월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하루가 인간의 1000년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일주일’ ‘올 한해’ 등 말미를 정해 놓고는 그 기간 안에 자신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급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선지자 요나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란 명령을 거역한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넣으셨습니다. 그곳에는 빛이 없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요나의 힘을 빼셨습니다. 성경은 요나가 갇혀있던 기간이 3일이라 했지만 요나는 그보다 훨씬 길게 느꼈을 것입니다. 결국 요나는 하나님께 굴복합니다.
1절에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라고 나와 있습니다. 요나가 자신을 바라보길 원했던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요나의 기도가 너무 늦었다고 지적합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아니 풍랑을 만난 배 위에서 바다에 던져지기 전에라도 기도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겁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과연 ‘늦은 기도’라는 것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우리는 늦었다고, 안 된다고 생각할 때도 하나님은 그리 생각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한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미 나사로의 시체는 썩었고 악취가 풍기는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살아있을 때 오셨으면 좋았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들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에 갇혀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고 나사로는 살아났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나옵니다. 스올은 곧 지옥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잘못을 저질러 자신이 지옥 한가운데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집어넣으셨고, 그런 하나님이 꺼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암담한 상황이 닥치면 눈을 감아버립니다.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다릅니다. 똑같이 눈을 감지만 기도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기도했고,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영의 눈은 감겨있고, 육체의 눈만 떠져있을 때 요나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육체의 눈을 감고 영혼의 눈을 떠 기도하자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9절에 보면 요나는 감사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구원까지 하나님께 위탁합니다. 기도의 위대한 힘입니다. 기도는 사람이 스스로의 죄를 깨달아 변화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늦은 기도는 결코 없습니다. 절망과 좌절을 경험했을 때 ‘이제 안 된다’ ‘전에 기도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포기하지 마십시오.
정지훈 목사(양산중앙교회)
[오늘의 설교] 요나의 기도
입력 2017-02-09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