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경제 인사이드] 기술+에너지 ‘융복합 혁명’

입력 2017-02-09 05:01


1970년대 경제학계에선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인구와 자원 고갈로 에너지 위기를 경고하는 쪽, 대체 가능한 에너지와 기술 진보로 극복할 수 있다는 쪽이 팽팽히 맞섰다.

비슷한 시기 전 세계 국가들은 총성 없는 에너지 전쟁에 돌입했다. 1960년대 엑손, 모빌, BP 등 메이저 석유 업체들에 대항하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결성됐고, 70년대 들어선 러시아, 멕시코, 이란, 이라크 등이 석유업체의 국유화를 시작했다.

에너지도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것은 1973년 4차 중동전을 계기로 발생한 ‘1차 오일쇼크’였다. 선진 에너지 소비국들은 OPEC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중심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도 결성했다.

그러나 79년 이란의 회교 혁명 이후 ‘2차 오일쇼크’가 오면서 세계 각국은 석유자원을 확보하는 데 힘쓰기 시작했다. 이후 석유자원을 둘러싼 충돌은 심화됐고 이라크전쟁, 체첸전쟁 등으로 이어졌다.

최근엔 수요 확보에 집중하던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환경 문제와 보호무역, 4차 산업 등 새로운 이슈와 맞물리면서 복잡다단한 성격을 띠게 됐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문영석 본부장은 8일 “과거에도 녹색성장 등 다양한 시각에서 에너지 정책들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는데 앞으로는 4차 산업, 환경 등의 이슈로 확대해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경계해야 할 것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환경 그리고 트럼프

2000년 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배럴당 20달러였던 것이 147달러까지 올랐다. 중국이 세계 경제 전면에 등장하면서 석유 소비가 늘어난 게 이유였다.

인천대 손양훈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란 산업의 기본소재인데 가격 변동이 엄청났다”면서 “만약 인건비가 그렇게 폭등했다면 세상이 난리 났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에너지 확보 전쟁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개발 경쟁 구도로 전환됐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힘을 보탰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구분 없이 전 세계 190여 국가가 2100년까지 스스로 정한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을 발표했다. 이는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55%를 차지하는 선진 38개국이 온실가스를 평균 5.2% 이상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은 이산화탄소 등을 배출하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소비는 화석 연료가 92.2%로 압도적이다. 석유 33.6%, 석탄 29.6%, 천연가스 23.8% 등의 비중으로 구성돼 있다.

신재생 에너지는 화석연료의 대체재로 쓰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같은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는 거짓”이라며 파리협정 탈퇴를 예고했다. 친환경 정책을 펼친 버락 오바마 정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에너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을 제시하고, 관련 부서에 친(親)화석연료 성향의 인사들을 앉혔다. 대표적인 에너지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트럼프의 에너지·환경 정책은 화석연료를 비롯한 미국 내 에너지·자원의 최대 활용, 에너지 생산 및 수출 증대를 통한 에너지 독립 달성, 오바마 정부의 관련 규제 축소·폐지로 요약할 수 있다.

대외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50조 달러 규모의 미개발된 셰일, 석유 등 자국 내 화석연료를 적극 탐사·개발·활용하기 위한 정부 지원책을 시행해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관련 세수를 공공 인프라 재건에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 변화는?

우리 정부는 80년부터 총 네 차례에 걸쳐 석유비축계획을 수립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석유비축시설을 구축하고 적정 수준의 비축유를 확보하려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덕분에 2010년 1억4600만 배럴 규모의 석유비축시설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5월 말 기준 이 시설에 담긴 정부 소유 전략 비축유는 9380만 배럴이었다.

에너지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도 짰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39개 에너지 관련 국제기구를 통한 국가 간 에너지 협력 관계를 분석해 보니 한국은 중심 국가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요 에너지 교역국 49개 국가 중 7번째로 많은 연결 관계를 맺고 있었고 9번째로 높은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국도 에너지 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은 K에너지 4.0이라는 주제를 던졌다.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를 연계했다. 기술 혁신을 통해 기존·신규 에너지원 간의 융복합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이 도래하는 시기가 에너지 4.0이라는 것이다. 기술융합의 대표적인 사례가 셰일가스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한 수압 파쇄법이나 수평시추법이다. 두 방법은 3D 프린팅 신기술이 없었다면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다. 에너지 저장장치(ESS), 스마트 그리드도 마찬가지다.

변화의 이유는 또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셰일 가스 개발을 공언하면서 석유시장의 주도권이 공급자에서 수요자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동권 국가와 또 다른 화석연료 수입선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공급자에 끌려 다니던 한국은 ‘바잉파워’를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

손 교수는 “우리나라는 사용하는 에너지의 96%를 수입하고 있다. 중동이나 미국 등의 상황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면서 “만약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진행될 경우 한국은 셰일가스 구매나 기술력을 들고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