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 얘기 좀 해요-문화계 팩트체크] 이젠 비판 받는 신세 된 연극 ‘청춘예찬’ 왜?

입력 2017-02-08 17:30 수정 2017-02-08 19:46
과거 명작으로 칭송받았으나 최근 들어 시대착오적인 여성 캐릭터를 그렸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한 연극 ‘청춘예찬’의 한 장면. 나인스토리 제공

Q : 1999년 초연된 ‘청춘예찬’은 한국 창작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그런데 재공연 중인 2017년엔 시대착오적인 작품이라 비판받고 있다. 왜 그럴까?

A : 박근형 연출의 ‘청춘예찬’은 한국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2000년대 소극장 연극모델을 대표하는 박근형표 일상극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소시민의 비틀린 삶을 사실적인 연기와 미니멀한 세트로 표현하는 것은 그만의 스타일이다.

초연 당시 온갖 연극상을 휩쓸었던 ‘청춘예찬’은 이후 꾸준히 공연돼 왔다. 서울 기준으로 2013년 공연 이후 3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8일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은 원년 멤버 출신으로 영화계 스타가 된 윤제문과 고수희가 돌아온 데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안재홍이 가세해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번 ‘청춘예찬’에 대해 관객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지난 공연까지 거의 칭찬 일색이었던 반응에서 “2016년(혹은 2017년)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작품” “시대착오적이라 공감하기 어렵다” “젠더감수성이 없고 폭력적이라 불편했다” 등의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여성 관객들은 극중 남성의 폭력과 욕설 등에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예를 들어 극중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맞고 살다가 염산을 눈에 맞아 장님이 됐다. 안마사로 일하는 어머니는 가끔씩 찾아오는 아버지에게 돈을 쥐어준다. 또 뚱보 혹은 소아마비로 나오는 여자는 청년과 하룻밤을 보낸 뒤 같이 살자고 매달리는가 하면 청년의 옛 여자친구 예쁜이는 청년의 칼부림에 얼굴을 다치고도 같이 다닌다.

이번 작품에 대한 차가운 반응은 티켓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의 공연 후기 코너만이 아니라 실제 극장의 썰렁한 객석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배우 고수희는 “개막 첫날부터 예상치 못했던 객석 반응에 깜짝 놀랐다. 30대 초중반 이하의 여성 관객들이 특히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형은 “시대가 확실히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짧게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연극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당황스러움 속에서 각각 엇갈리는 모습이다. 김소연 평론가는 “연극 속 빈번히 나오는 폭력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여성 캐릭터는 얼핏 수동적이거나 체념적으로 보이지만 남자 캐릭터와 똑같이 안간힘을 다해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여성혐오 논란과 소재주의적 비판 속에서 되레 사유의 영역이 협소해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체로 ‘청춘예찬’ 속 청춘의 고민이나 여성 캐릭터의 묘사가 요즘 관객의 감수성과 멀어졌다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조만수 평론가는 “‘청춘예찬’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여성이나 장애에 대한 폭력 문제가 부각되진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세분화되면서 작품을 보는 시각이나 담론 역시 다양해졌고, 이번에 여성의 관점에서 많이 논의가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진아 평론가는 “지난 1∼2년 사이에 여혐 논란과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나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여성들의 자각이 두드러진다”면서 “박근형 연출가가 시대 흐름을 포착하지 못한 채 예전에 머무른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