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 명재고택, 한 폭 수묵화 속 선비의 숨결 살아 숨쉰다

입력 2017-02-09 05:03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명재고택에 소복이 쌓인 눈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장독대가 고택에 정갈한 멋을 더해준다.
파평 윤씨 문중 자녀들을 교육하던 종학당 정수루.
‘지혜와 배려와 과학으로 지은 집.’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자리한 명재고택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명재(明齋) 윤증(1629∼1714)선생의 고택이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 동화돼 담장도 없이 이웃과 관광객들이 무시로 드나들 수 있게 돼 있다. 숨길 것 없이 투명하게 살아간 선비의 올곧은 기품이 느껴진다.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영역을 갖도록 배치된 구조와 추위와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장치도 곳곳에 숨어 있다.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는 23세에 소과에 급제해 성균관에 입학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일생을 초야에 묻혀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한 명망 있는 선비였다. 그가 칩거를 결정한 계기는 병자호란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오랑캐의 사신을 죽이고 명나라에 대한 의를 지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호란이 일어나 강화도로 피신했을 때는 다른 선비와 함께 자결을 서약했다. 하지만 그의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에도 그는 홀로 살아남아 도망쳤다. 이후 윤선거는 벼슬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은 채 거사(居士)로 여생을 보냈다.

한양에서 태어난 윤증은 부친과 함께 충청도에서 생활하며 부친의 행적과 인생관을 이어받았다. 과거를 보지 않고 18차례에 걸친 조정의 부름을 거부했다. 말년에는 우의정으로 천거됐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명재고택은 윤증이 팔순을 맞은 1709년 무렵에 세워졌다. 으리으리한 문도, 경계를 나누는 담도 없다. 바깥주인이 기거하는 사랑채는 풍류를 즐기기 좋도록 개방돼 있다. 하지만 안주인이 거주하는 안채는 상당히 폐쇄적이다. 문간채 앞에 서도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에둘러 들어가야 한다. 벽 아랫부분은 30㎝쯤 트여 있다. 안채 대청에 앉아 있으면 이 틈으로 손님의 신발이 보인다. 신의 종류와 깨끗함을 통해 객의 지위와 상태를 유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문간채를 바라보고 있는 ㄷ자집이다. 가운데에 마루가 있고 좌우에 부엌과 방이 늘어서 있다. 대청의 안쪽 벽에는 바라지창이 세 개 있는데, 창문을 열면 바람이 자연스럽게 통하면서 환기가 된다.

마루에 엎드려 창밖을 응시하면 장독대, 대나무, 담, 소나무가 케이크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대청을 가운데에 두고 섰을 때 왼쪽은 안주인, 오른쪽은 며느리가 주로 머물렀다. 부엌은 양쪽에 하나씩 있는데, 모두 뒷문이 달린 점이 이채롭다. 왼쪽의 부엌은 광채로 갈 때, 오른쪽의 작은 부엌은 사당으로 음식을 나를 때 이용했다.

안마당과 뒤뜰 외에도 작은 부엌 뒤편에 상당히 널찍한 정원이 있다. 화단에는 매화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화초가 자란다. 이곳은 며느리나 출가하지 않은 딸의 휴식처로 안채, 사랑채와는 거의 분리돼 있다. 자유롭게 나들이를 하지 못했던 여성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다.

명재고택에는 일상에 필요한 물과 바람, 햇볕을 슬기롭게 이용하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고택 바로 뒤 북쪽에는 해발 348m의 야트막한 노성산 자락이 겨울 삭풍을 막아준다. 집 앞에는 배롱나무가 심어진 직사각형의 꽤 넓은 연못이 있다. 이 못은 여름철 남쪽에서 불어오는 후텁지근한 바람의 온도를 낮춰준다.

집채가 겹겹이 자리하는 명재고택의 지붕은 높이가 조금씩 다르다. 행랑채보다 높여서 짓는 솟을대문과는 반대로 문간채의 지붕이 유독 낮다. 대문을 낮춰 안채 깊숙한 곳까지 햇살이 비치도록 한 것이다. 대문의 권위 대신 삶의 질이 배어 있다.

집 내부 안채와 광채 사이의 좁은 길에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나는 지혜가 숨어 있다. 두 건물 처마 간격은 뒤뜰로 향할수록 좁아진다. 여기에 유체가 깔때기처럼 단면적이 큰 곳에서 작은 곳으로 흐르면 속도가 빨라지고 압력은 낮아진다는 ‘베르누이의 정리’가 거론된다. 안채와 광채 사이의 길에서 폭이 좁은 곳은 북쪽이다. 차가운 북풍이 이 길을 지나면 세기가 줄고, 뜨거운 남풍이 통과하면 강해지면서 온도까지 조절하는 마법의 길이다.

사랑채 옆으로는 장이 익어가는 200여 개의 장독대가 놓여 있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마치 엄마 품에 안긴 듯 안정감과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장독대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가면 수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가 수호신처럼 고택을 바라보고 있다.

명재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파평 윤씨 문중의 특별 교육기관인 종학당(宗學堂)이 있다. 임진왜란과 두 차례의 호란으로 황폐해진 나라의 미래를 일으킬 인재 교육을 위해 윤증의 백부 윤순거가 1643년 건립했다. 초등교육을 위한 종학당, 고등교육을 위한 백록당이 있으며 쉼터인 정수루가 마련돼 있다. 체계적인 학습계획과 엄격한 교육을 통해 이곳을 거쳐 간 42명이 과거에 급제했다.









논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