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안팎에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론’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근거한 각종 설이다. 야권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일부가 조직적으로 기각론을 흘린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정미 헌법재판관 퇴임 이후 헌재가 ‘7인 체제’가 됐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가 많다. 탄핵심판을 최대한 늦춰 상황 변수를 키우고 그사이 보수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주장들이다.
재판관 9명으로 구성되는 헌재는 지난달 말 박한철 소장이 퇴임하면서 8인 체제가 됐다. 다음달 13일 이 재판관이 물러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우선 재판관 한 명이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히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를 수용할 경우 의결정족수 미달로 심판 절차가 중지된다. 심지어 여권에선 사퇴할 재판관 이름까지 나돈다. 탄핵소추가 인용되려면 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 출석해 6명 이상이 찬성해야 된다.
국회 측 소추위원인 권성동 바른정당 의원은 7일 “세상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살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이 재판관 후임 임명을 주장해 왔다. 헌재 재판관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7인 체제에선 2명만 반대 의견을 내도 탄핵소추가 기각된다. 박 대통령 측이 탄핵심판 지연작전을 펴는 것도 이런 노림수가 있다는 해석이 많다. 인선 주체와 과거 주요 결정에 비춰보면 강일원 김이수 이정미 재판관은 중도·진보에 가깝고, 김창종 서기석 안창호 이진성 조용호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다만 이번 탄핵심판은 이념 대결이 아니라 헌정 농단의 문제여서 정치적 성향이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헌재는 이날 박 대통령 측이 추가 신청한 증인 17명 중 8명을 채택했다. 오는 17일로 예정됐던 증인신문 일정은 22일까지 연장돼 2월 말 선고는 어려워진 상태다. 3월 초 선고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박 전 소장이 조속한 심판을 강조하자 전원 사퇴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지지할 곳을 잃은 보수 표심에 주목하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반 전 총장이 중도 포기하면서 보수 여론이 달라지고 있다”며 “태극기 집회가 ‘박 대통령을 지키자’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안 된다’는 쪽으로 바뀌면 불이 붙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광화문 촛불집회 기세는 한풀 꺾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황 권한대행 지지율이 상승세인 점도 보수 결집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여론전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박 대통령이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과 인터뷰한 내용이 지지층에선 상당한 반향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추가 인터뷰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심에 상관없이 확실한 지지세력과 정치하겠다는 의도다. 허원제 정무수석도 물밑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을 두루 접촉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탄핵 기각 가능성이 얼마가 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대응 방식에 청와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참모는 “무조건 억울하다고만 하는 대통령을 부추겨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건 대통령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의 한 의원은 “박 대통령은 본인이 살기 위해 비이성적인 결정을 계속 하며 보수 전체를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기획] 재판관 사퇴 등 시나리오… 與 탄핵기각론 ‘슬금슬금’
입력 2017-02-08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