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음메∼” “워메∼” 소도 농민도 울음

입력 2017-02-07 17:36 수정 2017-02-07 21:27
구제역이 발생한 전북 정읍시 산내면의 한 축산단지가 7일 방역 당국에 의해 출입통제된 가운데 한 축산농의 부인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고 이웃 주민이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난 농가는 오른쪽으로 200m쯤 떨어진 단지 끝에 있다.

“어쩌면 좋대….”

7일 오후 한우농가에서 구제역이 확진된 전북 정읍시 산내면의 한 마을. 날씨는 꽤 풀렸지만 분위기는 스산했다.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은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한적한 마을에 구제역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져 하루아침에 마을이 발칵 뒤집어진 탓이다.

100m쯤 떨어진 입구에서 축사를 바라보기만 하던 한 아주머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방제복을 입은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이 마을 축산단지 입구에 ‘출입금지’ 안내판을 세우고 소독 작업에 바삐 손을 놀렸다. 300m쯤 떨어진 밭에서는 매몰 작업을 위한 굴착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체 뭔 일이라요. 이렇게 공기 좋은 데서…. 소 하나만 보고 사는 사람들인디….”

주민 배모(61)씨는 축산을 하는 이웃들이 안타까워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마을 축산단지엔 모두 6농가가 340여 마리의 한우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구제역 확진 판정으로 5농가 174마리가 살처분되고 있다. 당초엔 구제역이 발생한 최모씨 농가의 소 49마리만 매몰할 계획이었으나 단지 내 소 절반이 살처분당하게 되자 주민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병에 걸린 것만 처리하면 되지 다 묻으라 하면 우린 어쩐다요.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됐는디.”

고향에서 26년째 소를 키워왔다는 강모(60)씨는 “정부가 보상해주겠다고 하지만 몇 년간 사육을 못 하게 되니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막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주민들은 최씨 한우의 5%에만 항체가 형성돼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는 주사만 놓았지, 그게 잘 (형성)되었는지 여부를 몰라요.”

7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강씨는 “몇 년 전 주사를 놓다가 소가 발버둥치는 바람에 앞니 서너 개가 부러진 적이 있다”며 “50마리 이상의 사육농가에도 정부에서 주사를 놓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발생 농가인 최씨는 축사 인근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읍은 한우 사육두수가 7만7700여 마리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전체 인구 12만명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인구가 한우 관련 산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나 이번 일로 큰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북의 축산농가들은 정읍과 고창 부안 김제 등 서부권에 퍼진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쑥대밭이 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구제역으로 인해 설상가상의 피해를 보게 됐다. AI 쓰나미가 채 끝나기 전에 구제역 태풍이 몰려온 셈이다.

전북지역 한우고기 수출도 멈출 것으로 보인다. 전북도는 지난해 초 구제역 발생으로 중단됐던 홍콩 수출을 지난달 중순 재개했으나 보름여 만에 다시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전북도 관계자는 “한풀 꺾였던 AI 의심 신고가 또 나오고 구제역까지 겹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정읍=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