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정복 사나이’ 다니엘 제이콥스, 사각링도 정복하다

입력 2017-02-08 05:10
다니엘 제이콥스가 지난해 9월 9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니아주 레딩의 샌탠더 아레나에서 열린 WBA 미들급 타이틀 방어전에서 세르히오 모라를 TKO로 무너뜨린 뒤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메고 기뻐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미들급 슈퍼챔피언 게나디 골로프킨. 리얼컴뱃 홈페이지

2011년 3월 중순 그는 동료 복서들과 함께 이라크의 한 미군 기지를 찾았다. 파병 미군들의 노고를 달래 주는 봉사 투어에 참가한 것이다. 갑자기 그의 두 다리에 힘이 빠지더니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는 단순한 신경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기공명촬영(MRI)을 해 보니 골육종(뼈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이었다. 의사는 그에게 “복싱은커녕 걷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프로 복서 다니엘 제이콥스(30)는 암을 극복했고, 이제 세계 통합 챔피언을 바라보고 있다. ‘황금의 아이(The Golden Child)’였던 그의 별명은 ‘기적의 사나이(The Miracle Man)로 바뀌었다.

WBA(세계복싱협회) 정규챔피언인 제이콥스는 3월 18일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WBA 슈퍼챔피언 게나디 골로프킨(35·카자흐스탄)에게 도전한다. 이 시합은 골로프킨이 보유하고 있는 WBA, WBC, IBF의 미들급 타이틀이 걸려 있다. WBA에선 정규챔피언이 4전 이상의 방어전에 성공하면 슈퍼챔피언으로 격상된다. 러시아인과 고려인 혼혈인 골로프킨은 프로 통산 36전 36승(33KO)을 거둔 세계 최고의 파이터다. 제이콥스도 33전 32승(29KO)1패를 기록한 강자이며, 2012년 복귀 후 10연승 행진을 이어오고 있어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제이콥스가 골로프킨의 아성을 무너뜨린다면 다음 상대는 누굴까.

영국 언론 ‘데일리 메일’은 7일(한국시간) “제이콥스가 IBO 슈퍼 미들급 챔피언 크리스 유뱅크 주니어(28)의 유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영국 출신의 유뱅크는 지난 4일 호주의 레놀드 퀸란(28)을 10라운드 TKO승을 거두는 등 25전 24승(19KO)1패를 기록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한때 회생불능으로 여겨진 이 복서는 이제는 세계 최고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하지만 5년 전만 해도 제이콥스가 암을 극복하고 재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2011년 5월 그는 뉴욕의 한 병원에서 6시간 동안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처음엔 휠체어를 타고, 다음엔 목발을 짚고 나중엔 지팡이에 의지해 암과 싸웠다.

물론 실의에 빠질 때도 있었다. 제이콥스는 복싱 잡지 ‘더 링’과의 인터뷰에서 “재활을 하며 ‘왜 하필 내게,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닥쳤나’며 화를 내기도 했다. 암은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제이콥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은 여자 친구 나탈리 스티븐슨이었다. 그녀는 “의사는 수술을 받은 제이콥스가 당분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두 시간 만에 수프를 먹었다”며 “그는 재기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불가능한 일들을 해내 의사들을 놀라게 했다. 나는 그를 ‘기적의 사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이콥스는 2012년 10월 고향인 뉴욕에서 19개월 만에 복귀전을 치러 상대 조쉬 루더랜를 1라운드에 KO시키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2013년 8월 WBC(세계복싱평의회) 미들급 컨티넨탈 아메리카스 챔피언에 올랐다. 2014년 8월엔 호주의 제라드 플렛처를 5라운드 KO로 쓰러뜨리고 WBA 정규 미들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암 진단을 받은 지 약 3년 반 만에 이룬 기적이었다. 그는 지난해 9월까지 치른 4차례 방어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제이콥스는 완치 판정을 받은 후 동병상련의 암환자들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다. 그는 암과 싸우고 있는 환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암과 싸우며 삶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간절해졌고,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됐습니다. 과거엔 세계 최고의 복서가 되는 것에 집착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요. 나의 사연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전엔 ‘왜 하필 내게…’라고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이젠 ‘나였지만 괜찮아’ 하고 말합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