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돼지 농가는 의무적으로 구제역 백신을 맞혀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소의 백신 항체 형성률이 97.5%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 젖소농장의 항체 형성률은 19%, 전북 정읍 한우농장은 5%에 불과했다.
정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7일 “백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백신을 접종할 때 따뜻한 물에 넣어서 녹인 다음에 써야 하는데, 두 농가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더 큰일은 두 농장만이 아니라 전체 한우와 젖소 330만 마리에 제대로 백신이 접종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방역 당국은 백신을 직접 접종해야 하는 대형 축산농가의 ‘백신 관리 부실’이나 ‘모럴 해저드(도덕 불감증)’를 의심한다. 사육하는 소가 50마리 이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백신을 놓아준다. 50마리 이상이면 농가가 직접 백신을 구입해 맞혀야 한다. 대형 축산농가에서 백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접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접종이력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일부 젖소농장에선 구제역 백신을 맞으면 우유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접종을 꺼리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 당국은 구제역 발생을 백신 접종 의무가 있는 농가의 잘못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축산농가는 방역 실패를 농민 탓으로 돌린다고 반발하고 있다. 신관호 한국낙농육우협회 충북지회장은 “백신 접종에 드는 비용이 기껏 10만원인데 그 돈 아끼자고 접종 안 하는 농가가 어디 있겠냐”고 말했다. 축산농가들은 과거처럼 백신 효력이 없는 ‘물 백신’ 때문 아니냐고 반박했다. 당국의 백신 접종 방법에 대한 홍보·교육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교적 까다로운 백신 접종 방법을 수시로 교육해야 하는데, 방역 당국은 고작 한 번 고지하고 ‘접종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농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정부 관리가 부실했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렵다. 한우의 항체 형성 표본조사는 전국 9만6000농가 가운데 10%를 선정하고, 이렇게 선정된 농가에서 소 1마리만 검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전체 한우 280만 마리 중 0.34%(9600마리)만을 대상으로 항체가 형성됐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항체 표본조사 방식을 농가당 1마리에서 5마리로 늘리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물 백신’ 왜?… 농가, 우유 생산 감소 등 이유 기피-정부, 엉성한 표본조사·관리 부실
입력 2017-02-07 17:42 수정 2017-02-07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