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도서 ②] 성직자 위선 등 풍자한 ‘지적 군주’

입력 2017-02-09 00:03

종교개혁의 횃불이 활활 타오르던 시대, 유럽의 지적 군주로 통했던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무스(1466∼1536)의 전기. 당시 유럽 지식인들은 ‘에라스무스로부터 편지를 받은 분’이라는 소개를 영광으로 여겼다. 에라스무스의 생애를 통해 종교개혁 시대 유럽 지성의 궤적을 추적해볼 수 있다. 저자는 ‘마르틴 루터’(생명의말씀사)로도 유명한 교회사가 롤란드 베인턴이다.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성직자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문법학교와 수도원에서 고전학과 신학을 공부한 그는 프랑스 파리대학 신학부에서 수학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 고전에 담긴 자유로운 인간의 이상과 기독교 정신이 융합된 저작을 내놨다.

성직자들의 위선과 신학자의 허구성을 풍자한 우신예찬(愚神禮讚, 1511)과 대화집(Colloquia, 1518)이 유명하다. 특히 우신예찬은 교회의 부패를 고발했기 때문에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화집에는 천국 입장을 거부당하는 교황 율리우스가 등장한다. 그가 출간한 신약성서 번역서는 소수 사제가 성경해석을 독점하는 현상을 타파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면서 말씀으로 회귀할 것을 역설했으나 종교개혁 운동에 대해선 중립을 지켰다. 루터는 여러 차례 에라스무스에게 지지를 요청했으나, 그는 사양했다. 에라스무스는 온건한 자유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그를 파괴적 인물로 배척하고 프로테스탄트는 그를 도피적 인물로 배척했다. 결국 에라스무스는 ‘지친 자유주의자’로 생을 마감했다.

루터와 에라스무스 양자에 대한 인물평도 흥미롭다. 저자는 “루터는 ‘나는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고 에라스무스는 ‘나는 나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고 했다.…한 사람은 몸으로 헤쳐 나가고, 다른 이는 사고(思考)한다”(354쪽)고 평가했다.

주도홍 백석대 교수는 “종교개혁가들의 지적 멘토였던 그의 생애를 소설처럼 술술 읽히게 썼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