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신성환] 차가운 금융과 따뜻한 복지

입력 2017-02-07 17:43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선거철이면 늘 그래왔듯 정치권에선 선심성 금융 관련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고용의 88%(중소기업청, 2014년 기준)를 감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중견기업, 나아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다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적절한 금융서비스를 못 받고 있는 서민들이 정상적 금융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다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중소기업 및 서민 정책금융 지원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및 보증 지원 규모는 각각 1997년 9000억원 및 16조9000억원 수준에서 2015년 3조9000억원 및 79조7000억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탄생한 정책서민금융 지원 규모는 2010년 3조2000억원 수준에서 2015년 4조6000억원 수준으로 증가했다(중소기업청, 신용보증기금, 금융위원회 등 자료). 문제는 과연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및 서민 정책금융이 이러한 목적에 충실하게 설계되어 있는가, 그리고 이 목적을 충분히 달성해 왔는가 하는 것이다.

명확한 목표점이 없는 중소기업 및 서민에 대한 금융정책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중소기업에 대한 잘못된 정책금융은 중소기업 생태계를 망치고 교란하여 오히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서민에 대한 잘못된 정책금융은 금융의 원칙을 무너뜨려 결국 서민들이 정상적인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하게 된다. 따라서 중소기업 및 서민에 대한 금융정책은 다음의 사항을 반영해 설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목표를 명확히 하고 목표 달성 여부를 지속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평가지표를 갖추어야 한다.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지원은 금융정책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다. 도저히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중소기업에는 사업 재편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정상적인 금융 활동을 하기 어려워 보이는 서민들에게는 복지 차원의 지원을 하며 이들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원칙이 깨져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이 깨지면 금융 시스템은 붕괴되고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결국 금융시장으로부터 퇴출되게 된다. 물론 부채 상환으로 인해 지나친 고통이 수반되는 것은 막아야 하겠지만 이것은 사전에 잘 정비된 제도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 부실화된 대출에 대한 채무조정 등 사후관리 역시 금융회사가 주어진 제도의 틀 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어떤 기업 또는 서민에게 자금을 지원할지에 대한 의사결정은 최대한 민간 금융회사가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이에 대한 민간 금융회사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 자금에 대한 절박한 손익 압박이 없는 공공기관이 자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대한 민간과 위험 공유를 하며 민간이 구체적 집행 의사결정을 하도록 구조화해야 한다.

지금 한창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우리 경제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성장 기업을 찾아낼 수 있는 냉철한 금융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금융이 따뜻하기를 바라는 것은 환상이다. 올바른 금융정책은 차가운 금융과 따뜻한 복지의 역할 분담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