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곽금주] 강압 이겨내는 예술의 힘

입력 2017-02-07 17:19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취임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여러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취임식 전날 뉴욕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반대시위가 진행됐다. 로버트 드니로, 알렉 볼드윈, 마크 러팔로 같은 유명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그를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취임식이 열리는 와중에도 날선 비판을 하는 예술가들의 행동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다음날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관련된 권력자들이 구속됐고 관련 공무원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 비판 문화인에 대한 권력자들의 불편한 시선은 이 정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반대하는 상대를 그저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비판자에 대한 처우는 자칫 커다란 압박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가요가 외교적인 이유로 금지된 적이 있다. 당시는 정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뜻 수긍 가지 않는 이유로도 금지곡이 되곤 했다. 스팅의 ‘러시안스(Russians)’라는 곡은 제목이 러시아인들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와 관련된 음악은 무조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노래는 러시아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의 가사를 담았음에도 말이다.

독재정치에 대한 예술인들의 정치적 표현은 두드러진다. 앙드레 말로는 반나치 소설을 통해 나치정권을 비판했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면서 공산주의를 증오하게 된 조지 오웰은 공산주의를 풍자·비판하는 작품들을 쓰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 완성된 ‘동물 농장’은 출판사들이 출판을 거부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스탈린주의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공격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출판된 그의 작품은 20세기 최고의 정치 우화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는 건축물의 벽면이나 교각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거대한 그림을 그린다. 이를 통해 기성세대의 관습과 권력화된 제도, 전쟁의 참상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래서 ‘게릴라 아티스트’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 ‘거리의 테러리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1960년대 쿠바혁명으로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면서는 사회주의 이념을 담은 포크송이 전파되었다. 권력자는 자신의 사상을 담은 음악을 퍼뜨려 나라를 장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럼에도 쿠바의 전통음악을 연주하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영향력은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다른 대상에 투사함으로써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곤 한다. 시, 음악, 그림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고통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는 데 특히 도움이 된다. 이런 해소는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이 예술작품에 투사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감정의 정화라는 차원에서 예술과 문화는 한 사회의 정신적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예술작품은 인간의 이성을 건드리기보다 감정적인 소통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을 보는 동안 인간의 뇌를 촬영해본 결과 정서와 연결된 부위가 활성화되었다.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도, 해석하고 분석하는 이성적인 판단 없이도, 뇌는 자동적으로 나름대로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감정 전달은 사람을 움직이는 데 이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독재자들은 이렇게 예술과 문화를 장악하려 했는지 모른다. 감정의 힘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그러한 강압을 이겨내는 힘 또한 바로 예술과 문화인 것을 말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