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입을 여는 순간

입력 2017-02-07 17:19

타국의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갔을 때 한눈에 한국인 인증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백발백중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한국인인 나를 한국인으로 본다. “어디에서 왔니?”라든지, “너 한국인이니?”라고 확인하는 절차가 전혀 없이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 있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그럴 때면 나 혼자만 식스센스급 반전에 휘말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저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서 한번은 물어봤다. “내가 한국인인 걸 어떻게 알았어?” 하와이의 빅토리아시크릿 매장에서 직원이 다가와 “한국 사람들은 이 제품을 좋아해. 이 제품도”라고 말했을 때였다. 외모로 국적을 가늠한다는 것이 내게는 영 어려운데, 그는 수많은 사람을 보다 보니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피부 톤이 다르고, 메이크업과 패션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일행이 있을 경우에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좀 듣는 거야. 한국어인지 일본어인지는 구분할 수 있으니까.” 좀 허무해질 만큼 단순한,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왜 ‘말’을 잊고 있었지? 혼자 다닌 적을 제외하면 나도 끊임없이 동행에게 말을 하고 있었고, 그건 당연히 한국어였다. 생각해보면 말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계속 흘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태국의 한 호텔에서 TV 채널을 돌리다가 자꾸 시선이 가는 배우를 보게 되었고, 그가 한국 배우 ‘지성’을 닮았다고 생각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진짜 ‘지성’으로 밝혀졌다. 우습게도 태국어 더빙 덕에 나는 그가 한국 배우라는 것을, 그게 한국 드라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내 둔함을 감안하더라도, 드라마의 배경조차 너무나 ‘태국’적으로 느껴졌던 건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말이란 게 참 요물이구나, 하고.

윤고은(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