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소재가 중복되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남녀주인공 둘씩 나와 사각관계를 그리는 건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걸 답습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고요. 그래서 저는 단순히 말랑말랑하고 아기자기한 것보다 참신한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배우 공유가 정확히 1년 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지난해 2월 영화 ‘남과 여’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왜 팬들이 그토록 원하는 드라마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는 케이블채널 tvN의 ‘도깨비’ 출연을 결정했다. 시공을 넘나드는 기발한 설정과 색다른 소재에 끌렸던 것이다. 이 작품은, 모두가 알다시피,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을 몰고 왔다.
이제 지상파 드라마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동소이한 로맨틱 코미디 위주 라인업에서 탈피해 장르의 다변화가 이뤄지는 중이다. 미스터리 추리극, 오피스 코미디,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물이 몰려왔다. SBS ‘피고인’, KBS 2TV ‘김과장’은 각각 월화, 수목 황금시간대 시청률 1위를 꿰찼고, MBC ‘미씽나인’은 단단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지성이 2년 만에 선보인 복귀작 ‘피고인’은 배우들의 호연과 영화 같은 스토리로 호평을 얻고 있다. 주인공 박정우(지성)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에이스 검사였으나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희대의 사이코패스 차민호(엄기준)가 짠 음모에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사건 전후 4개월간의 기억을 잃은 박정우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분투가 이 작품의 줄기다. 지난달 23일 첫 방송된 드라마는 1회부터 동시간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치밀한 전개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지성과 엄기준의 연기대결은 단연 압도적인 볼거리다.
사회 부조리를 유쾌하게 꼬집는 ‘김과장’은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으며 본격적인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이영애의 복귀작 ‘사임당, 빛의 일기’(SBS)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초반 다소 밀리는 모양새였으나 4회를 기점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드라마는 뒷돈 빼돌리기에 능한 회계사 김성룡(남궁민)이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얼떨결에 의인이 돼 부정부패와 싸우는 이야기. 낙하산 인사, 직장 내 성추행 등 직장인들이 공감할만한 소재를 통쾌하게 그려냈다. 남궁민이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극을 이끌고, 남상미 이준호 김원해 등 배우들이 탄탄히 뒤를 받친다.
‘미씽나인’은 미드(미국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신선한 스토리를 앞세웠다. 톱스타(정경호)를 비롯한 연예기획사 관계자 9명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무인도에 갇힌 뒤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최초 발견 생존자(백진희)의 희미한 기억에 의존해 실종자들의 행방과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김과장’ ‘사임당’과 맞붙는 바람에 한 자리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으나 체감 인기는 상당하다. 6일 TV프로그램 화제성 분석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미씽나인’은 2월 첫째주 TV드라마 부문 화제성 1위(점유율 11.83%)를 차지했다. 배우들의 맛깔스런 연기와 쫄깃한 연출로 젊은 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들이 장르적 경계를 넓혀나가는 데에는 tvN, JTBC 등 케이블·종편 채널의 선전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케이블·종편에서 불어온 변화의 바람이 당연히 지상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더욱이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현실 환기 장치를 넣어 시국에 부합하는 장르로 소구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글=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피고인’ ‘김과장’ ‘미씽나인’까지… 여기 지상파 맞나요
입력 2017-02-0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