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남색 코트를 입은 전 더블루케이 이사 고영태(41)씨가 증인석에 들어섰다. 피고인석에 앉은 최순실씨는 고씨를 흘낏 쳐다본 뒤 자신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 쪽으로 몸을 움츠렸다. 고씨 또한 최씨를 향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과 한때 그의 최측근이었던 내부 폭로자의 신경전은 재판 시작부터 팽팽했다.
“최순실은 현금거래만 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 재판에 출석한 고씨는 “더블루케이는 최씨가 설립했고, 조성민 전 대표 등은 바지사장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최씨가 회사 사무실을 알아보라고 해 대표도 없는데 무슨 회사를 만드느냐고 반문했다”며 “이후 최씨가 대표를 한 명 소개해줬는데, 그게 조 전 대표였다”고 말했다.
더블루케이 폐업 뒤 행적에 대해 고씨는 “더블루케이 이사 사임서를 제출한 후 회사에는 가지 않았다”며 “언론 보도를 통해 모든 사무실 집기가 텅 비어있고 제 책상 하나만 달랑 남아있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고씨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옷을 만든 서울 강남 의상실 비용은 모두 최씨가 냈고, 고씨는 운영만 했다.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이 박 대통령의 신체 사이즈를 의상실에 제공했지만, 시침질(가봉) 과정에서 옷이 맞지 않아 결국 의상실 직원이 청와대를 직접 방문해 대통령의 사이즈를 측정했다고 한다. 고씨는 “차은택씨가 최씨에게 추천한 사람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임명되는 걸 보고 부적절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2015년 8월 독일에서 박원호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와 나눈 대화 내용도 증언했다. 그는 “당시 박 전 전무에게 ‘좋은 프로젝트에 지원해주셔서 앞으로 금메달도 나올 수 있겠다’고 하니, 박 전 전무가 ‘그건 말도 안 되는, 꿈같은 소리다’고 일축했다”며 “그때 168억원 상당의 지원 계약을 맺은 걸로 아는데, 그런 말을 해서 (박 전 전무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영태 흠집 내기’ 몰두
최씨 측은 고씨와 최씨의 ‘연인 관계’를 암시하는 질문을 반복했다.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는 “고씨가 살았던 월세방 보증금 3000만원을 누가 내줬느냐”며 “최씨가 빌려준 돈 아니었느냐”고 추궁했다. 이어 “최씨가 고씨 집을 찾아가니 젊은 여자가 있었다”며 “그 여성이 최씨에게 ‘고씨가 있으라고 해서 있었다’고 말한 사실이 있지 않으냐”고 캐물었다.
고씨는 “사생활을 법정에서 대답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고, 재판부가 제지해 질문은 중단됐다. 최씨 측의 추궁에 한 노년 여성이 방청석에서 “증인을 다그치지 마라”고 소리를 쳐 퇴정당하기도 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고씨와 합작법인인 고원기획을 운영했던 김모(38)씨의 녹음파일 2000여개 중 고씨와 나눈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 일부가 공개됐다. 최씨 측은 당시 고씨가 김씨에게 한 대화 내용을 근거로 “고씨 본인이 K스포츠재단에 부사무총장으로 들어가 재단을 장악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며 “실제로는 고씨가 재단을 장악하려 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고씨는 “야구나 축구경기를 보면서 ‘내가 저기 들어가면 다 골을 넣을 수 있다’ 뭐 그런 얘기를 한 것”이라며 “‘거기(K재단)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대화가 끝났었는데, 내가 마치 재단을 장악하려 한 것처럼 한다”고 반박했다.
최씨는 재판 시작 8시간30분 만인 밤 10시30분쯤에서야 고씨에게 직접 질문을 던졌다. 최씨는 “이경재 변호사의 사무장을 통해 고씨의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 알고 있느냐”며 “개명을 하려다 마약 전과로 못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 고씨는 “전부 사실이 아니다”고 짧게 답변했다.
양민철 황인호 기자
최순실 흘낏, 고영태 외면… 팽팽한 신경전·설전
입력 2017-02-06 17:48 수정 2017-02-07 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