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특파원의 인터뷰] 정근모 前 과기처 장관 “트럼프 시대, 한국 원전 산업엔 큰 기회”

입력 2017-02-07 05:02 수정 2017-02-07 07:59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한국수력원자력 워싱턴DC 센터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미국 내에서 한국형 원자로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시대는 한국 원자력발전 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한국 원자력계의 대부인 정근모(78)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원자력발전을 중시하고 있어 한국형 원자로의 세계시장 진출 전망이 한층 밝아졌다고 진단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의장을 지내는 등 세계 원자력 석학인 정 전 장관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미국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차 워싱턴DC를 방문했다. 기도회에서 해외 원자력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한 그는 지난 3일(현지시간) 한국수력원자력 워싱턴DC 센터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정 전 장관은 먼저 “한국 원자력계는 국민일보가 장기 연재한 원전 시리즈 보도에 대해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국민일보는 2015년 ‘원전,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시리즈 기사를 싣고 원전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조명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자력발전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원전 건설 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원전 수요가 늘어나면 한국형 원자로가 크게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미국 원자력업계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부터 상당한 기대감을 품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인 2011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행기가 추락해도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자동차 사고가 나도 자동차를 타지 않느냐”면서 “나는 원자력에너지를 지지한다”고 할 만큼 원전에 우호적이다.

미국은 현재 5기의 원전을 짓고 있지만, 무엇보다 가동 중인 99기가 대부분 낡아 조만간 교체해야 한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미국 내에서 원전 건설이 크게 위축됐지만 아직 원자력만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태양열 등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경제성 면에서 원자력을 대체할 에너지원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이 한국형 원자로의 부각을 확신하는 이유는 현재 미국에서 건설이 가능한 원자로는 설계인증 심사 중인 한국형 원자로(APR1400)를 포함해 3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2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가압경수로 AP1000과 제너럴일렉트릭(GE)의 비등경수로 ESBWR이다. 이 중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4곳에서 건설 중인데 예정된 공기를 못 맞추면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등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GE의 ESBWR은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비등경수로여서 기피 대상이다.

그런데 APR1400은 내년 중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통과할 가능성이 매우 큰 최신 3세대 가압경수로여서 벌써부터 전문가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NRC의 기술적인 질문 2300여개를 대부분 완벽하게 답변하면서 심사 1단계를 무사히 통과한 한국형 원자로는 내년 9월까지 최종안전성평가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2009년 186억 달러(약 21조3000억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을 수주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NRC의 설계인증을 받아내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이후 한국은 프랑스 아레바와 일본 미쓰비시도 실패한 NRC의 설계인증 심사를 차질 없이 당초 시간표대로 진행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세계 발전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인 UAE 원전 건설을 한국이 완벽하게 추진하고 있어 다른 나라들도 한국형 원자로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우연히 이번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케냐의 원자력청 관계자들을 만났다. 미 국가조찬기도회는 전 세계 160여개국에서 참여하고 있다. 케냐 정부의 고문을 맡고 있는 정 전 장관은 케냐의 산업화를 위해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또 루마니아 국회의원들을 워싱턴DC에서 만나 한국형 원자로의 도입 여부를 타진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루마니아 국가조찬기도회의 초청으로 루마니아를 방문하면서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한국 원전 수출의 전망이 매우 밝다는 걸 확신했다”며 “원자력의 본고장인 미국에 한국 원자로가 들어설 날도 머지않았다”고 강조했다.



정근모 전 장관 약력



△1939년 서울 출생 △경기고 중퇴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료 △미시간주립대 응용물리학 박사 △미 MIT 핵공학과 연구교수 △뉴욕공대 핵공학과·기계공학과 교수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의장 △제12, 15대 과학기술처 장관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자력 국제자문위원 △한국과학기술원 석좌교수



워싱턴=글·사진 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