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이두용] “절반이 가위질 된 영화가 부활한 셈이죠”

입력 2017-02-07 00:04 수정 2017-02-07 09:48
이두용 영화감독이 6일 오후 서울 잠실 인근의 공원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을 간증하고 있다. 이 감독은 “하나님과 함께 하니 평안함을 느낀다. 여생을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위해 더 열심히 뛸 것”이라고 말했다.강민석 선임기자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최후의 증인’의 한 장면. 왼쪽부터 배우 정윤희 이대근 최불암.
“예수 믿으니 참 좋은데요. 새신자인 저로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제가 37년 전 만든 영화 ‘최후의 증인’(포스터)이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만 봐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6일 오후 만난 이두용(75) 영화감독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이 감독은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온화한 표정이었다. 1980년 개봉영화 최후의 증인이 오는 9일 개막하는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고 귀띔했다.

그는 “서슬 퍼런 전두환 신군부의 검열을 받고 필름의 절반 정도가 삭제된 영화라 그런지 더욱 애착이 간다”며 “관심에 감사드린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와 늘 기도해주시는 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9일 영화 관계자들과 함께 영화제 참가차 독일 베를린에 간다. 그는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 작품을 모아 회고전을 열었다”며 “이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위원들이 최후의 증인을 감명 깊게 본 것 같다. 그리고 그 영화필름을 베를린으로 이송한 것”이라고 초청된 이유를 밝혔다.

이 영화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검열로 1시간 가까이 잘린 100분 버전을 만들어 상영했다고 한다. 87년 출시된 비디오는 여기서 10분이 잘린 90분 버전이었다. 그 바람에 이야기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을 만큼 영화는 만신창이가 됐고, 열흘 남짓 상영하다 영화간판을 내려야 했다. 오죽했으면 이 감독은 개봉된 영화를 보다 내 작품이 아니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정도다.

이 감독은 “그렇게 잊혀졌던 영화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우연히 잘려나가지 않은 원본으로 보관된 사실을 알게돼 빛을 보게 됐다”며 “이 영화가 뒤늦게 재평가를 받는 것은 당시 시대상을 암울한 이야기와 영상 속에 녹여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타살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를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과 권력자들의 타락, 여기에 짓눌린 서민의 아픔을 올곧이 그렸다.

“시사회 때 누가 영화를 보고 청와대에 투서를 했어요. ‘빨갱이 영화’라고요. 검찰에 불려 다녔지요. 영화를 그만둬야하나 방황했죠. 다행히 이번에 복원된 영화를 베를린영화제에 선보일 수 있게 됐습니다. 마치 죽었던 자식이 살아온 같습니다.”

이 감독은 ‘장르의 해결사’로 불린다. 1970년 배우 신성일 문희 주연의 ‘잃어버린 면사포’(1970)로 데뷔해 액션 멜로 사극 사회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했다. 연출작이 60여편이나 된다. 태권도 액션 영화의 전성시대도 연 적이 있을 정도다.

‘피막’으로 1981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특별상을 받았고,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한국영화 최초로 1984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80년대의 유명 영화감독이다. 이 감독이 잊지 않는 것은 바로 영화의 ‘비판’ 기능이다.

그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에는 당대를 파헤치는 날카로움이 녹아 있다. 요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는 남북문제로, 정치와 이념을 떠난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내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이 감독이 지난해 10월부터 경기도 고양 충정교회(옥성석 목사)에 출석하고 있다. 교회에 가려면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이동해야하지만 힘이 든 줄도 모른다고 했다. 이어 “평소 친하게 지내는 배우 양택조 집사의 인도로 교회에 다니게 됐다. 어릴 때 친구 따라 교회 간 것 말고는 처음이다. 교회가 이렇게 마음에 평안을 선물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간증했다.

그는 “젊었을 땐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자신감에 살았다”며 “하지만 나이 먹고 나니 신심(信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요즘 시간만 나면 주위 분들께 성경에 대해 묻고 공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기도하면 불안했던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강한 척 하지만 저는 약한 인간입니다. 한국영화가 이제 세계를 향해 나아갈 때입니다.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