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스위스 종교개혁에서 길을 본다

입력 2017-02-06 20:38

올해는 마르틴 루터에 의해 1517년 본격화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국내 개신교 중 장로교 인구가 약 70%다. 그런데 이 장로교의 근원은 루터가 아니다. 장로교의 기원은 훌드리히 츠빙글리와 장 칼뱅이 주도한 스위스의 종교개혁에 있었다. 이것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네덜란드를 거쳐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약 35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많은 변형을 짐작케 해 준다.

루터가 자신의 신앙문제 때문에 종교개혁에 접근했다면 츠빙글리는 고통당하는 민족의 문제를 고민하며 종교개혁에 이르렀다. 루터는 자신의 종교개혁을 관철시키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제후들의 손을 들어주며 착취당하던 농민을 외면했다. 이는 그의 큰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혁을 ‘미완’으로 만들었다. 츠빙글리는 그런 점에서 루터와 달랐다. 그가 살던 시대의 스위스는 가난했다. 국민들은 용병제도에 의존해 살았다. 가난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의 전투에 참여했고 그 급료로 생활했으나 정작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가난의 악순환이었다.

츠빙글리는 북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전투의 현장에 군종사제로 참여했다. 이때 스위스의 젊은이들이 각각 다른 편의 용병이 돼 서로 죽이고 죽는 처참한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용병제를 통해 혜택을 보는 것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정치적 이익집단이었고 중세 가톨릭 교회였다. 교회는 용병 중개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 ‘거룩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 분노가 종교개혁의 동력이 됐다. 츠빙글리는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 공공성을 무시한 소수 권력자의 횡포에 저항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어갔다.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되게 하라’는 것에서 출발했다. 즉 불완전한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 군림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에 비춰 끊임없이 인간의 정의를 정립하도록 촉구했다. 신앙이 하나님과 나만의 수직적 관계를 바탕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그리고 사회 안에서의 수평적 관계로 확산돼야 함을 뜻한다. 츠빙글리는 성서 원어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주력했고 이를 종교개혁의 핵심적 교육사업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면서 기독교에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놓는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렇게 얻어진 성서의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토록 했다. 그래서 지식의 민주화와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종교개혁은 이처럼 소수의 독점적 지배체제에 저항하고 경제적 체제의 변화를 통해 공동의 선을 추구하며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오게 했던 생산적 과정이었다.

스위스는 이후 츠빙글리가 토대를 놓은 종교개혁을 바탕으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제도를 고쳐 나갔다. 츠빙글리 사후 그의 후계자 불링거는 제네바의 개혁자 칼뱅과 협력하며 스위스 종교개혁과 사회개혁을 이끌어갔다. 주변국에서 박해를 피해 온 이탈리아의 왈도파들, 프랑스의 위그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 종교 난민들이 보유한 기술력을 통해 오늘날 스위스의 주력 사업인 제약, 화학, 시계 등 정밀공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스위스는 이렇게 다양성 속에서 연합을 이끌어내고 국가 이름이 곧 경쟁력이 된 오늘날의 복지국가 기틀을 마련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소수에 의해 다수의 국민이 집단으로 고통을 당하는 위기에 빠져있다. 참담한 상황 가운데 희망적인 것은 수준 높은 방법으로 저항의 정신을 회복하는 민중들의 선한 힘이 유기체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개혁이 끝난 교회는 있을 수 없고 개혁돼야만 하는 교회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다.

한국교회가 이를 진정으로 계승하고자 한다면, 신앙을 개인적 차원의 것으로 축소시키지 않고 한국사회를 병들게 한 구조적 죄악을 직시하며 교회 내부의 개혁이 사회의 개혁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7년은 온 세계가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해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정립해 추락한 한국의 위상을 다시 세우도록 개혁해야 할 카이로스(Kairos)적 시간이다.

정미현(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